안양예술고등학교 이나라

벚꽃 그늘


흔든 탄산음료를 열면 쏟아지는 거품처럼
가지마다 흰 벚꽃잎들 부풀어오른 나무에
비에 젖은 현수막이 고개 숙인 채 매달려있어요
백 여든 하나의 계단 곳곳에 숨어사는 이들에게
벚꽃나무 위의 흰 꽃잎들은 유일한 빛,
어두운 마을을 밝혀주는 가로등이죠
빛이 있는 곳에는 그늘이 지기 마련,
나무 그늘은 마을 전체를 감싸 안을 만큼 커서
어느 짐승의 보호색처럼 어두운 이곳 마을을 감추어줘요

손톱보다 작은 크기만큼 벚꽃의 생은 짧아요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소음에
현수막 속 처절한 외침들마저 가지치기 당한 나무 아래로
그늘도 조각조각 갈라지는 중이에요
한바탕 몸살을 앓은 벚꽃나무 아래로
두드러기처럼 꽃잎들이 떨어지고,
눈부실만큼 환하던 꽃잎들은
그늘에 물들어 빛을 잃었어요
몸살을 앓고 나면 성장한다고
벚꽃이 피어있던 자리는 금세
높은 건물들의 소란스러움으로 자라겠지만
갈라진 그늘은 여전히 검은색일테죠

흑백사진처럼 정지된 벚꽃 그늘의 풍경 위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봄이 잠시 머물다 가요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