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상

바다로 가는길

신솔잎 (안양예술고등학교)

아빠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한 손에는 악어 이빨 모양을 한 톱 한 개가 들려 있었다. 그럼 나는 그 자동차를 타고 아직 가보지 못한 먼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는 역시 내 아들이라며 허공에서 나를 몇 바퀴 돌리고는 다시 톱을 잡았다. 사실 그 때 dkQK가 djEJs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아빠는 지하실에서 의자도 만들어내고 내 몸통보다 큰 침대도 만들어냈다. 지하실에서 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가 나면 동시에 베토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노래 소리는 엄마가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유치원에 다녀오자마자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나는 지하실로 향했다. 가까이 가는대도 톱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쿠버 다이빙용 장비들이 주욱 세워져있는 계단을 지나 문을 열었을 때 톱이 박혀있는 나무토막과 지하실 속에서만 흩날리는 나무 가루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날라다니던 나무 가루가 목에 걸려 켁켁거렸다. 얼른 올라가서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크리스탈 컵을 들어 물을 따라 마셨다. 정말 목에 나무 가루가 걸렸었다고 생각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아닐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더 컸다. 엄마는 티 테이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크리스탈 컵도 내려놓지 않고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가 없어졌다고 말하자 엄마는 컵이 깨질까 겁이 난다면 품위있게 걸을 수 없냐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뒤돌아서 아빠는 분명 바다로 갔을거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엄마는 여전히 책을 바라보며 아빠는 호텔에 갔을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한달에도 몇 번씩 있는 동창모임에 가는 날 나는 아빠와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가기로 했다. 물론 나는 아직 꼬맹이기 때문에 물속에 들어갈 수 없지만 아빠가 항상 말하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그날 여느 동창모임때와 다름이 없었다. 귀걸이는 멀리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컸고 옷을 텔레비전에서 평창동 사모님이 입는 옷 같았다. 몇 센치나 커보이는 키는 악세사리가 달린 하이힐 때문이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꼭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했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기 때문에 아빠도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엄마가 나가는 문소리가 나자마자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용 장비를 챙겼다. 여느 가전제품만한 산소통을 자동차에 싣는 일이 가장 힘들어 보였다. 자동차 트렁크에 산소통, 호흡기 그리고 검은색 옷을 모두 넣고 아빠는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엄마가 해줄 때는 언제나 꽉 조이던 안전베르를 아빠는 꽤나 느슨하게 해주었다. 푹신한 자동차 의자와 아빠 그리고 바다가 있어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초콜릿을 받는 것보다 더 신이났다. 산이 보였고 집에서 보던 해도 계속해서 자동차를 따라왔다. 아빠에게 해가 계속해서 쫓아온다고 하자 아빠는 해도 바다를 보고 싶어서 쫓아오는 거라고 했다. 집에서 출발하자마자 튼 노래가 벌써 여덟 번도 넘게 돌아갔지만 아빠도 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처음 나온 터널을 지나가고 나오는데 마치 내가 살고있는 세상이 아닌 유치원 선생님이 읽어주던 동화책 세계같았다. 그 때 들었던 새소리와 고속도로 옆 계속에서 울려 들리던 새소리가 진짜였을까.
도착한 바다에는 여러명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빠도 곧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넓은 바다는 정말 아빠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얼굴을 붉힌 해도 정말 바다까지 따라왔다. 모두들 곧 입수를 했다. 처음에는 수면위로 비누방울같은 방울들이 몇 개 쯤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바다는 엄마의 침묵처럼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물은 계속 움직여 내 발을 조금씩 적셨다. 그 어린시절 때 나는 바다속에 낭떨어지 일 것만 같았다. 아빠가 올라오지 않자 계속해서 발을 굴렸다. 바닷물이 뒤로 물러날 때 쯤 다시 방울들이 생기며 모두 올라왔다. 호흡기를 뺀 아빠는 오래 기다렸냐며내 머리를 흐트러놓았고 나는 안심했다. 곧 아빠는 사진을 나에게 내밀었다. 산호초들 사이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다속에는 여름이지만 눈이 내렸고 아빠는 나중에 꼭 함께 보자고 말했다.
아빠가 사라지고도 엄마는 책을 읽었고 나는 유치원에 다녔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쯤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맞은편에서는 밥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도 내지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콩을 골라내며 밥을 먹는대 엄마는 콩 고르는 것도 콩나물 머리를 먹지 않는것도 지 아빠와 똑같냐면서 화를 냈다. 그 뒤로 콩을 골라 먹을 수 없었다. 아빠였다면 내 밥에 들어있는 콩을 함께 골랐을텐데.
한 여름밤의 불면증 같았던 사춘기를 끝냈고 이제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난 바다로 갈거다. 엄마는 내가 아빠와 똑같은 운명이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바다로 향했다. 가는 길은 변한 것 같지만 유치원생이었던 예전처럼 신이났다.
바다에 아빠가 없을지 모르지만 바다 속에서 내리는 눈은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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