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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사건사④]韓 · 日 양국을 뒤흔든 한 할머니의 용감한 외침
이신영 기자  |  smplsy76@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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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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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는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1991년 8월, 한 할머니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잔혹한 일본군의 만행이 담겨 있었고, 그 사연은 일파만파로 퍼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할머니의 이름은 김학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실명을 밝히며 증언한 이였다.

김학순 할머니는 16세 때 양아버지에게 이끌려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아버지는 김 할머니를 일본군 부대에 팔아넘겼다. 어딘지도 모르는 깜깜한 곳에서 그녀는 일본군 장교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후 자유를 구속당한 채 하루에도 몇 명의 군인들에게 당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위안부 생활’이 시작됐다.

“그때 일은 말로 다 못해요. 인간 이하의 생활이었기에 생각을 안 해야지…. 입술을 깨물고, 도망가려다 끌려오고….” 위안부 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조선인 남성과 탈출을 시도하고, 일본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성공한다. 이후 중국에서 자녀를 낳고 46년 한국에 귀국했으나 50년대에 남편, 자식들과 사별하는 비극을 겪은 뒤 날품팔이와 행상으로 연명했다.

한 많은 생을 살던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실명을 밝히고 증언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본 측의 태도 때문이었다. 1990년 6월, 일본은 ‘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한 이들은 일본군이 아닌 민간업자였다’라고 발표하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관여를 전면 부정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태도에 할머니는 격분했고, 그들의 과거사를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1991년 8월, 김 할머니는 동대문감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실명을 밝히고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폭로했다. 할머니의 폭로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야만 했던 김 할머니에 대한 동정심과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야 했던 그녀를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수치심이었다. 놀라운 것은 김 할머니의 고백에 용기를 얻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신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이들의 한스러운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커다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게 됐다.

1991년 12월, 김 할머니 등 3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청구한다. 그 직후인 1992년 1월, 때마침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의 관여를 증명하는 군문서가 일본 방위청에서 발견됐다. 발뺌할 수 없게 된 일본 정부는 일본 수상의 한국 방문을 기회로 일본 정부의 관여를 시인하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노태우 대통령 또한 일제의 강제 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2009년 현재까지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학순 할머니의 외침이 음지 속에 가려져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현안으로 이끌어내고, 한 · 일 양국의 중대한 외교 문제 중 하나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1997년 고인이 됐다. 김 할머니의 외침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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