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갔던 약국의 모습이 기억난다. 포근한 모습의 약사님은 언제나 웃으시면서 비타민 영양제를 쥐어 주셨다. 항상 미소와 함께 무언가를 쥐어 주셨던 그 약사님 덕분에 근엄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과 무서운 주사가 있던 병원과 달리 약국을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훨씬 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좋은 기억은 내가 약학을 전공하도록 이끈 한 요인이 됐던 것 같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이공계를 중시했고 TV나 여러 매체에서도 흰 가운을 입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멋있게 그려주었다. 나 또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지적인 여성 과학자를 꿈꿨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집에서 같이 지내시던 외할머니께서 중병으로 많은 고생 끝에 돌아가시자 조금씩 내 꿈은 바뀌었다. 외할머니를 간호하느라 병원과 약국을 숱하게 드나들면서 점차 건강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마침내 약대를 선택했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시절 간직했던 과학자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모양이다. 약대 졸업 이후 제약회사나 병원에 취직하거나 약국을 다니는 대다수의 동료들과 달리, 아직도 대학원 실험실에서 조그마한 실험용 쥐들을 옆에 두고 약물들과 씨름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약대, 약사라 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전문 직종으로 선망하기도 하지만, 단지 처방전에 적힌 약을 건네주거나 약을 파는 장사꾼 정도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약학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학문이다. 질환의 치료는 대개 약물 투여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근래 들어서는 질환의 치료뿐만 아니라 질환의 예방과 건강관리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면서 여러 가지 약제와 건강 보조식품, 기능성 약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의ㆍ약학의 발달로 인한 수명 연장 등으로 고령화 인구가 늘어나면서 제약 시장은 이미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주목 받고 있는 바이오산업의 주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약학을 정의하자면 신약 개발부터 약품의 제조와 관리, 약품의 올바른 사용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관련 기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성분이나 인공적인 합성 물질들에 대한 물리, 화학적 특성과 분자 구조 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또한 이러한 물질들이 인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의ㆍ약품 생산 공정이나 품질 관리, 평가 기법에 관한 지식도 필요하다. 약학을 전공하고 약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반 지식이 이처럼 광범위 하다 보니 타과에 비해 졸업에 필요한 이수 학점도 10학점 이상 많고, 2009년도부터는 불완전한 형태이긴 하지만 6년제로 전환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약사, 약학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들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약사 아주머니에게서 느낀 따뜻함과 포근함이 아닐까 싶다. 국민과 사회 건강의 중요한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전문가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주위 사람들과 국민들을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약사의 상이 중요하다. 나 또한 종종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최근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우수한 후배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모두들 다양한 이유로 약대를 선택했겠지만 부디 진정한 약사의 모습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보는 후배들이 됐으면 한다.
정현주(치료약학, 학사 5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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