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후면 ‘2024 파리 올림픽’이 열린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완전한 성평등 올림픽’이란 타이틀을 앞세웠다. 참가하는 선수는 남성 5250명, 여성 5250명으로 올림픽 최초로 두 성별의 균형을 맞췄다. 100년 전 ‘1924 파리 올림픽’의 여성 선수가 135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과거 여성에게 스포츠는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스포츠계에서 어떤 차별을 받아왔는지 찬찬히 알아보자. 


내 손으로 쟁취한 스포츠 참여 기회
스포츠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소외돼 왔다. 여성은 체력이 약하고 연약한 존재란 편견과 스포츠가 사회적 여성성을 훼손한단 고정관념은 여성의 스포츠 참여를 제한했다. 남성들의 잔치였던 고대 올림픽에서 여성은 관람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를 관람하다 적발된 여성은 경기장 옆 절벽에서 처형당했다.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최초의 근대 올림픽에도 여성은 없었다. 올림픽 창설자이자 초대 위원장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은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동반자이자 가정의 어머니다’라며 ‘여성의 스포츠 참여는 여성적 매력을 파괴하고 스포츠를 격하한다’라고 주장했다. 여성이 최초로 참여한 올림픽은 4년 뒤 열린 1900년 파리 올림픽이었다. 에밀 졸라(Emile Zola)를 비롯한 프랑스 지식인들은 여성의 올림픽 참가를 요구했다. 그 결과 22명의 여성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여성 선수는 전체 선수의 2.2%에 불과했으며 테니스, 골프 종목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용기 있는 도전은 스포츠 역사를 바꿨다. 1967년 20살의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는 여성 최초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마라톤은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영역이었다. 성별을 숨기고 올림픽에 등록한 그는 대회 중 감독관에게 들켜 심한 저지를 당했지만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사건이 신문에 실리면서 ‘여성의 달릴 자유’에 대한 논의가 크게 확산됐다. 이후 1971년엔 여성의 마라톤 참가가 허용되고 1984년 LA 올림픽에선 여성 마라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테니스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여성 테니스 선수는 까다로운 복장 규정과 남성보다 8배 낮은 우승 상금으로 차별받았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빌리진 킹(Billie Jean King)의 여성 운동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남성우월주의의 바비 릭스(Bobby Riggs)는 킹에게 테니스 대결을 제안했다. 킹은 ‘여성해방운동을 막아야 한다’라며 여성을 무시해 온 릭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9천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킹은 과거 세계 1위였던 릭스를 3대0으로 이겼다. 대결 이후 4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의 우승 상금은 성별과 관계 없이 동일하게 지급되기 시작했다. 또한 여자 테니스 협회가 결성돼 여성 선수의 권익이 향상됐다.

우리나라 여성 체육은 여학교에서 시작됐다. 1892년 이화학당의 제3대 학당장으로 취임한 조세핀 페인(Josephine Pain)은 질병 예방을 위해 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유교 문화 속에서 여성의 체육 활동을 사회적 물의로 여기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화학당의 체조 과목은 다른 여학교로 퍼져나갔다. 이후 다양한 경기 종목이 보급되면서 여학생의 운동 복장도 치마에서 바지의 한 종류인 블루머(Bloomer)로 바뀌었다. 1923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전조선여자정구대회’엔 8개의 여학교가 참여했다. 대회엔 3만 명의 관중이 모이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경성의 인구가 30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다. 대회에 출전했던 여성 선수들은 이후 심판이나 지도자가 되어 우리나라 여성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여성 선수 앞길 막는 성차별
우수한 여성 선수에도 불구하고 스포츠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역대 하계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여성 선수 1098명 중 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269명으로 24.5%에 달했다. 반면 남성 선수는 1959명 중 320명으로 16.3%였다. 금메달리스트 비율 역시 여성 선수는 7%, 남성 선수는 5%로 나타나 여성의 결과가 더 뛰어났다. 우리나라 여성 스포츠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체육계의 여성 참여율은 상당히 저조하다. 2021년 한국체육학회에 따르면 주요 체육 단체의 여성 임원 비율은 서울시체육회 18.2%, 경기도체육회 12.2%, 대한핸드볼협회 11.1%로 조사됐다. 올해 2월 기준 대한체육회 임원 52명 중 여성은 11명뿐이다. 세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중 여성 비율은 37.5%, 집행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33.3%에 불과했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역시 여성 이사는 전체 인원의 25%에 그쳤다. 역대 IOC와 IPC 위원장 중 여성은 없었다. 

여성 종목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여성 선수의 연봉은 남성보다 적었다. 여자 프로 배구의 인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자 프로 배구를 앞서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세계 4위인 터키를 꺾고 4강에 오르자 여자 배구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배구 선수 12명 연봉의 합은 22억 4210만원으로 남자 선수 12명의 연봉 합인 66억 5800만원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2021-2022 V리그 대회 요강’ 속 여자부 정규리그 1위 시상금은 남자부보다 2000만원 적은 1억원이다.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샐러리캡(Salary Cap)’ 역시 여자 배구가 훨씬 적었다. 샐러리캡은 스포츠 선수들의 과도하게 높은 몸값을 제한해 스포츠 클럽 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제도이다. 여자 배구의 샐러리캡은 2020년부터 23억으로 동결됐지만 남자 배구는 꾸준히 상승해 2022-2023 시즌 41억 5000만원을 달성했다. 2023-2024 시즌 기준 남자부 샐러리캡은 58억원, 여자부는 28억원이다.

성차별적인 유니폼 규정은 여성 선수를 성적 대상화하고 경기력을 저하한다. 2021년 유럽 비치 핸드볼 선수권 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노르웨이 여자 대표팀은 경기에 불편한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 경기 직후 국제핸드볼연맹(IHF)은 반바지를 ‘부적절한 복장’으로 판단해 선수 한 명당 15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며 한화로 약 21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책정했다. 해당 조치가 성차별적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자 IHF는 반바지와 민소매 복장으로 유니폼을 변경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선수는 몸에 딱 붙는 반바지를 입어야 한단 규정이 IHF 규정집에 명시돼 있다. 유체라(독일언어문화 21) 학우는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이 불편해 경기 능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불편한 여성 유니폼은 여성 선수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단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여성 선수의 외모와 사회적 여성성을 부각하는 미디어의 보도 행태는 성차별적 인식을 강화한다. 우리나라 다수의 언론은 여성 선수를 ‘태극 전사’ 대신 ‘태극 낭자’로 표현하거나 ‘미녀’ ’여신’ ’요정’ 등 외모를 묘사하는 수식어를 사용한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SNS에선 스포츠 중계의 문제적 발언을 수합한 ‘올림픽 중계 성차별 발언 아카이빙’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조차 외모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는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논란이 됐다. 선수의 SNS와 양궁협회 홈페이지엔 악성댓글이 도배됐다. 일부 네티즌은 ‘머리가 짧은 여성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며 선수에게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유 학우는 “외모로 여성 선수를 판단하는 것은 여성을 스포츠인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 생각한다”며 “여성 선수는 실력과 상관없이 외모로만 평가받는 존재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스포츠계 최우선 과제, 성평등
스포츠계에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해선 국내 주요 체육 단체의 여성 임원 비율을 높여야 한다. 스포츠정책과학원장을 맡았던 남윤신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남성 중심의 체육계에선 여성 스포츠 전문가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직급별 여성 임원 비율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스포츠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선 여성 지도자를 먼저 배양해 전문 지식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성 지도자가 고용 형태, 근로 조건 등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체육 분야 내 성평등한 채용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남 교수는 “여성 선수는 비교적 증가했지만 여성 감독은 아직 부족하다”며 성평등한 스포츠 환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체육계 내부에 성평등 가치를 녹여내기 위해선 명확한 성차별 금지법안이 필요하다. 미국은 지난 1972년부터 스포츠 성차별을 금지하는 고등교육법 ‘타이틀 나인(Title IX)’을 제정해 여성 스포츠인을 양성했다. 타이틀 나인 제정 후 미국 운동부에선 성별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할 수 없는 환경이 형성됐다. 미국 주연방 고등학교 연합 자료에 따르면 타이틀 나인 제정 38년 후 여자 고등학생 스포츠 참여 인구는 317만3549명으로 1971년에 비해 약 288만 명 증가했다.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도 1976년 1만 명에서 2000년엔 270만 명까지 늘어났다. 역대 9번의 FIFA 여자 월드컵 중 4번의 우승을 차지한 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의 저력도 여학생 체육에서 비롯된 결과다. 

관중의 시선이 아닌 여성 선수의 경기력을 위한 유니폼이 필요하다. 지난해 열린 ‘나이키 우먼 2023’ 이벤트에선 2023 여자 축구 국가 대표팀의 유니폼이 공개됐다. 이벤트 이전까지 여자 축구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나이키는 다양한 연령대와 체형을 가진 여성 6만8천여명의 신체를 연구해 선수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니폼을 고안했다. 또한 인체 스캔 및 3D 툴을 이용해 선수들의 움직임과 체형을 분석한 데이터로 땀자국으로 인한 불편함을 없앴다. 반바지에 장착된 라이너 ‘리크 프로텍션: 페리어드(Leak Protection: Period)’는 월경혈이 새는 것을 방지한다. 

성차별적 스포츠 중계를 막기 위해선 젠더 감수성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중계진을 비롯한 언론 방송 종사자의 성평등 의식 함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 따르면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여성 중계진은 24.8%, 캐스터는 3%에 불과했다. 성별 고정관념 등 문제성 발언을 한 중계진 비율은 남성이 79.4%, 여성이 20.6%였다. 성차별적 보도를 없애기 위해선 미디어 속 여성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성평등을 향한 세계의 움직임은 시작됐다. 지난 1월 IOC는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2024 파리 올림픽에 참여하는 여성 코치를 30%까지 할당하라고 요구했다. 스포츠를 향한 여성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이들의 여정에 대중의 관심과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앞으로도 ‘태극 전사’ 여성 스포츠인의 행보에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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