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문화생활을 책임지는 도서관에 적신호가 켜졌다. 올해 예산안에서 한 해 60억 규모였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삭감으로 도서관의 독서 프로그램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위태로운 도서관을 구출하기 위해선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할까.


독서 문화의 핵심

▲한국, 미국, 일본의 공공도서관의 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한국, 미국, 일본의 공공도서관의 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우리나라엔 공공도서관이 부족하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총 1236개로 9207개인 미국, 3305개인 일본보다 적다. 또한 인구에 비해 공공도서관이 부족해 하나의 기관이 4만1617명의 인구를 담당한다. 미국 3만5687명, 일본 3만8322명, 호주 1만5210명에 비해 과한 수치다. 각 지역이 보유한 공공도서관 수의 격차도 심하다. 2022년 기준 지자체의 공공도서관은 서울 195개, 강원도 60개, 부산 49개로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도서관은 책 대출 서비스뿐만 아니라 독서 프로그램을 제공해 독서 문화 확산에 기여한다. ‘작가와의 만남’이나 ‘사서 추천 도서’가 그 예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도서관 이용자는 저자와 소통하며 도서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경기도 부천시립 원미도서관은 사서가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선별해 추천하는 ‘책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북큐레이션 서비스’를 운영했다. 모바일 환경에서 이뤄지는 독서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용산구립 청파도서관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어린이 대상 ‘책 읽어주기 서비스’를 실시했다. 

최근 도서관은 독서 공간을 넘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다양한 시설을 겸비해 6개월 동안 약 5만명의 이용자가 방문했다. 해당 도서관은 작곡 스튜디오, 열린 극장, 동아리방 등을 갖추고 있다. 평생학습도 도서관의 역할 중 하나다. 공공도서관 평생학습관에선 매달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해 성인부터 청소년, 어린이, 취약계층 등을 위한 수업을 제공한다. 

작은도서관은 지역사회 곳곳에 독서 문화가 뿌리내리도록 돕는다. 해당 기관은 지자체, 아파트, 시민단체, 지역 주민 등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현재 우리나라 작은도서관은 총 7464개로 공공도서관에 방문하기 비교적 어려운 지역 주민의 도서 접근성을 높인다. 특색있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작은도서관만의 특성이다. 이은주 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이사장은 “작은도서관은 행정 절차가 복잡한 공공도서관과 달리 유연한 발상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어린이와 작은도서관 협회는 2020년부터 어린이 작업실 ‘모야’를 운영하고 있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모야에선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작업물을 창작할 수 있다. 역사 깊은 작은도서관의 경우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이용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기능도 수행한다. 제주시에 위치한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2016년부터 ‘제주어르신그림책학교’를 운영해 사라지는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제주어 그림책’을 제작했다. 


구멍 뚫린 도서관 정책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독서 문화 증진 사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 약 60억 규모의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항목으론 독서 동아리, 영유아를 위한 책 제공 서비스인 ‘북스타트’, 거동이 어려운 고령층을 위한 ‘전화로 찾아가는 책 친구’와 ‘책의 해’ 등이 있다. 해당 사업은 2007년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마련됐다. 그러나 올해 정부의 예산안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사업 항목 자체가 사라졌다. 이 이사장은 “예산안에서 완전히 제외된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선 복잡한 행정 과정이 필요하다”며 “예산에 공백이 생겨 도서관이 진행해 온 독서 프로그램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작은도서관도 정부의 예산 삭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매년 작은도서관의 실적을 평가해 상위 35% 기관에게 약15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왔다. 2021년 7억, 2022년 5억6천만원이었던 서울시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은 지난해 1월 전액 삭감됐다. 서울시 보조금 심의위원회는 작은도서관의 사업 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이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해 7월 ‘작은도서관 육성 지원 사업’에 7억8천만원을 재편성했다. 대구시도 지난해 작은도서관 활성화 지원사업비 2억 2천만원을 삭감했다. 대구시는 해당 예산을 7월 예산 추가 편성 시기에도 반영하지 않았다. 지자체의 예산 절감 시도로 작은도서관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경우도 있다. 2022년 마포구는 구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9곳을 독서실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주민들의 항의 시위가 열리자 결정을 취소했다. 

현재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과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 부재해 더 나은 도서관 운영을 위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 두 자리는 1년 넘게 공석이다. 도서관법에 따르면 국가는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수립할 국가도서관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 국가도서관위원회는 향후 5년간의 도서관 정책의 방향과 도서관이 수행할 역할이 담긴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세워야한다.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이 위원회를 직접 구성해야 하지만 정부가 위원장을 임명하지 않아 새 위원회 또한 조직되지 않았다.


도서관, 정부에게 바란다
정부는 국민의 삶에 독서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서관 관련 예산을 회복해야 한다. 독서동아리에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는 ‘사회적 독서’를 경험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시행한 제3차 독서문화진흥기본계획에서도 ‘사회적 독서 활성화’와 ‘독서의 가치 공유’를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이 이사장은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며 “도서관은 책 읽는 공동체를 만들어 독서 문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삭감한 ‘국민독서문화 진흥지원’ 사업엔 독서동아리 지원금이 포함된다. 전국의 공공도서관이 운영하는 5529개의 독서동아리를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선 지원금 확보가 중요하다. 

정부는 사립 작은도서관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사립 작은도서관은 총 5321개로 1578개인 공립 작은도서관 보다 약 3배 많다. 사립 작은도서관은 설립 주체에 따라 아파트, 개인 및 민간단체, 종교단체로 구분된다. 2022년 작은도서관 운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1485개의 사립 작은도서관은 직원 없이 자원봉사자가 운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사립 작은 도서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정부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립 작은도서관 운영 주체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작은도서관 운영 교육’도 존재하나 2022년 기준 참여율이 15.2%로 저조해 체계적인 교육이 신설돼야 한다. 이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일괄적으로 시행하는 온라인 교육은 잘 알려지지 않아 사서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차이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공공도서관의 관장직은 사서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도서관법에 따르면 공공도서관 관장은 사서 자격증을 소유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관장직은 사서가 아닌 공무원이 맡는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의 ‘2022년 공공도서관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 내 공공도서관 297곳 중 절반인 152곳의 관장은 사서 자격증이 없다. 국내 표준직업분류(KSCO)에 따르면 사서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에 포함된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이다. 도서관을 총괄하는 책임자인 관장이 전문 사서가 아니라면 도서관 이용자가 전문적인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도서관 안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 누구나 지식을 얻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때론 돌봄과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도서관은 문화와 복지의 중심에 서 있다. 도서관의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의 각별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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