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는 필자가 입시 당시 6지망으로 생각한 학교였다. 너무 솔직할지 모르지만 새 학기를 맞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본교를 6지망으로 생각했단 사실이 이젠 필자에게 중요치 않다. 그 사실은 현재의 필자에 대해 어떤 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필자에게 본교가 6지망 학교에 불과했던 때가 있었다. 본교에서 2년을 보내며 어느새 ‘스며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가 새삼스럽다.

본교 사진 중앙동아리 숙미회(이하 숙미회) 활동을 시작하며 숙명의 역사 속에 들어왔음을 처음 느꼈다. 휴대폰만 들고 사진 몇 장 찍어보려고 들어간 동아리에서 어느새 필자는 상상하지 못한 선배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 ‘선배’라고 하면 30대 직장인을 상상했던 필자의 앞엔 조부모님과 비슷한 연세의 선배님이 앉아 계셨다. 필자와는 먼, 숙미회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분들처럼 느껴졌다. 숙미회 선배님께선 먼 과거의 숙미회의 모습과 우리보다 2~3년 앞선 선배들의 일화를 이야기하셨다. 그 순간 우리가 ‘숙명여대’와 ‘숙미회’란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단 사실을 체감했다.

동아리 방으로 돌아간 필자는 숙미회의 과거 흔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숙미회 50주년 자료집을 펼쳐보니 숙미회가 창간된 지난 1961년부터의 역사가 정리돼 있었다. 80학번보다 훨씬 이전의 선배님이 흑백사진 속에서 수동식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계셨다. 숙미회 선배님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의 사진사이기도 했다. 선배님 중엔 현재 사진계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유명 인사도 계셨다.

필자는 그때 깨달았다. 우린 단순히 동아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고. 우리의 훨씬 전 세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닿아있다고. 그 사실을 깨닫자 동아리 활동에 대한 책임감과 본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그 감각은 필자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감사하게도 숙미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다른 단과대의 동문회 행사를 촬영할 기회가 여러 차례 찾아왔다. 이미 사회에서 자리 잡고 계신 선배님이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기꺼이 기여해주셨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연령대에 상관없이 본교와 자신의 단과대, 그리고 학과에 대한 풍부한 애정과 열정을 지니고 계셨다. 힘차게 단합을 도모하고 연설하시던 선배님, 교수님을 향해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시던 선배님, 우아한 박수로 동의를 표하던 수많은 선배님. 우린 어느 단과대학이든 이런 멋진 분들을 선배로 만나 뵐 수 있다.

필자는 새로 지어진 동네에서 자라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새롭게 개교한 학교에 다녔다. 즉, 필자의 위로 1기에서 3기 정도의 졸업생만 존재했다. 그런 필자에게 본교는 충격을 안겨줬다. 필자를 역사 속으로, 그리고 또 다시 미래로 힘차게 등 떠미는 것 같은 충격. 우린 숙명이란 역사 속에 들어온 것이다.

임규리 한국어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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