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91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5번째로 길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3월 근로시간 개편안에서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주 4일제를 도입하는 해외 사례가 들려오는 현 상황에서 69시간 일하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유독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근로의 원인과 문제점, 그 해결책을 알아보자.


잘못된 적응, 장시간 근로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부터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 52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과 법정 연장근로시간인 12시간을 더해 도출된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이다. 근로자는 법정 근로시간에 따라 하루 8시간씩 일주일에 40시간 이하로 근무한다. 노사 합의가 있다면 연장근로시간을 추가해 최대 12시간 더 일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보다 4시간 많다. 2021년 기준 일주일에 48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근로자’ 비율도 OECD 평균 7.4%보다 2배 이상 높은 18.9%를 기록했다. 

장시간 근로문화가 자리 잡은 원인은 다양하다. 13일(월)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에선 사업자 976명과 근로자 3839명에게 장시간 근로문화가 형성된 이유를 물었다. 사업자 54.5%(532명)는 ‘고질적인 인력난 및 추가 인력 채용 부담’을, 근로자 25.8%(990명)는 ‘관행적인 야근 문화 및 눈치 보기’를 이유로 들었다. 저임금 근로자는 부족한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해 장시간 근로환경에 내몰리기도 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최근 최저임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에 비해 낮다”며 “임금이 낮은 노동자는 추가 수당을 벌기 위해 합의된 근로시간보다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일주일 근로시간’에 대한 의견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 46.7%(467명)는 주 48시간, 응답자 34.5%(345명)는 현행 주 52시간이라 답했다.
▲지난 6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일주일 근로시간’에 대한 의견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 46.7%(467명)는 주 48시간, 응답자 34.5%(345명)는 현행 주 52시간이라 답했다.

근로현장 속 근로자는 연장근로를 원하지 않는다. 청년은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과 짧은 근로시간을 추구한다.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청년 구직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세대 직장 선호도 조사’ 결과 청년은 직장을 선택할 때 ‘임금 및 복지(86.7%)’와 ‘근로시간 및 워라밸(70%)’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 장시간 근로를 선호하지 않는 세대는 청년뿐만이 아니다. 6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적절한 일주일 근로시간을 조사한 결과 46.7%(467명)는 주 48시간, 34.5%(345명)는 현재 시행 중인 주 52시간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김동현(51) 씨는 “오래 일하느라 가정에 소홀해진 경험이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도 가정에 충실하기엔 힘들다”고 말했다.

누굴 위해 오래 일하는가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의 일과 삶의 균형을 해치고 삶의 만족도를 저해한다. 우리나라의 하루 여가시간 비율은 24시간 중 4.3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근로시간이 길어지면 개인의 삶을 위한 여유를 갖기 어려워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다. 4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월간 노동리뷰’에 따르면 여가시간 비율이 높은 국가는 근로시간이 길지 않고 삶의 만족도가 높다. 4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3 워라밸 및 주 52시간 근무제도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의 38.8%(388명)가 ‘과도한 근로시간 때문에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

계약시간보다 오래 근무했음에도 근로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기업 252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포괄임금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29.7%(749개)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초과 근무수당을 미리 산정해 임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이다. 일부 기업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기도 한다. 근로자가 사전에 계약한 초과 근무시간보다 오래 근무하면 기업은 초과한 시간만큼 추가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기업은 임금에 초과 수당이 포함됐단 이유로 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3일(월)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에서 근로자 44.7%(1716명)는 포괄임금제 개선 방안으로 ‘명확한 근로시간 계산을 기반으로 한 임금 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장시간 근로를 반대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근로시간 연장을 주장한다. 지난 3월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행 주 52시간제는 연장근로시간을 일주일에 12시간으로 규정한다. 개편안에선 연장근로시간을 주 평균 12시간 이내로 설정한다. 해당 개편안에 따르면 근로자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해야 한다. 연장근로시간을 늘리려는 의도는 해당 개편안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3일(월) 고용노동부는 개편안과 관련해 근로자 3839명, 사업자 976명, 국민 12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적절한 휴식이 보장된다면 일주일에 52시간 이상을 일할 의향이 있는가’란 문항은 희망적인 전제를 설정해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했단 논란을 빚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실제론 보장되지 않는 휴식시간을 전제해 실제 근로환경을 왜곡한다’며 ‘현 정부는 노동계의 의견을 듣지 않고 실태조사를 준비했으며, 조사 결과를 제출하란 국회의 요구도 묵살했다’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이 처음 제정된 1953년엔 주 60시간제를, 2004년엔 주 5일제를, 2021년엔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며 근로시간을 꾸준히 줄여왔다. 최근 정부가 공개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려는 사회 요구에 역행한다. 

근로시간 개편, 미래를 봅시다
근로자의 휴식을 위한 연차 휴가 사용이 보장돼야 한다. 연차 휴가는 근로기준법으로 보장된 제도지만 정작 근로자는 주어진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국내 기업에선 80% 이상 출근한 1년 차 근로자에게 유급 휴가 15개를 지급한다. 해외에선 더 많은 휴가가 주어진다. 입사 1년 차 근로자에게 벨기에는 24개, 프랑스는 30개의 연차 휴가를 보장한다. 김 소장은 “근로자의 휴가를 늘려야 근무일이 줄어든다”며 “우리나라도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휴가 개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하는시민연구소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시간 노동, 프리젠티즘, 휴가 활용 실태조사’ 결과 직장인들은 지난해 연차 휴가로 받은 평균 13일 중 8.6일만 사용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근로자는 연차 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사내 문화를 의식해 휴가 사용률이 낮다”며 “연차 휴가처럼 근로자의 일시적인 휴식을 보장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법정 근로시간 자체를 단축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주 4일제를 확대해 실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선 일부 병동 간호사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일하는시민연구소의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시범사업 중간결과 보고회 자료집’에 따르면 시범 운영에 참여한 간호사의 임금은 10% 삭감됐지만 일에 대한 개인의 만족도는 오히려 약 2배 증가했다. 주 4일제를 운영한 기업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영국에서 70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시범운영한 결과 참여기업 86%(61개)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주 4일제가 탄소배출을 줄인단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Platform London)’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주 4일제를 도입했을 때 연간 발생하는 온실가스 1억2700만 톤을 감축할 수 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 근로자는 필요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유연근무제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시차출퇴근제’와 ‘선택근무제’가 사용된다. 시차출퇴근제는 하루 전체 근무시간을 정해두고 근로자가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하는 제도다. 선택근무제를 실시하면 특정 기간 내에 총근로시간을 정해두고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1년부터 월~금 중 오전7시부터 10시 사이에 출근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해 사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지난 3월 발표된 ‘연장근로 단위 유연화’ 개편안에선 최대 근로시간을 늘리려는 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과연 누가 일주일에 69시간 혹은 52시간씩 일해야 하는 근로환경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개인의 안정적인 근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앞으로 나타날 개편안에선 국민이 원하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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