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의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문학을 즐겨 읽던 학생이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기까지. 그의 삶은 온통 소설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우주를 유영하는 김 동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국어책부터 문예지까지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문학 작품과 글 쓰기에 눈 떴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김 동문은 국어 교과서와 문제집에 실린 문학 작품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공부가 정말 싫었지만 문학 공부할 때만은 즐거웠어요”라며 “시를 몰입해서 읽다가 무심코 중얼거릴 만큼 문학 작품에 푹 빠졌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글에 대한 김 동문의 관심은 대학 입시 논술을 준비할 때도 드러났다. 그는 “긴 글을 요약하는 연습이 즐거웠어요”라며 “논술 선생님께선 힘든 논술 공부조차도 즐겁게 여긴 저를 보시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셨죠”라고 말했다. 국어 공부와 글쓰기에 대한 흥미는 진로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는 “문학 공부만큼은 오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한국어문학부를 선택했죠”라고 설명했다.

본교 한국어문학부에 진학한 김 동문은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이야기 창작자를 양성하는 한국어문학부 연계전공 ‘스토리텔링전공’ 과정에서 처음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김 동문은 “완벽한 글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했단 사실이 뿌듯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도서관 1층 세계여성문학관에 자주 드나들며 다양한 도서를 접했다. 김 동문은 “대학 진학 후 낯선 환경에 놓이다 보니 친숙한 인물의 이야기로 위로를 얻고 싶었어요”라며 “같은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자주 읽었죠”라고 얘기했다. 그는 작가와 작품의 유명세보단 원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으며 그만의 문학 세계를 넓혀갔다.

대학 휴학 후 김 동문은 본격적으로 독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 평소 접하지 않던 책을 시도했다. 김 동문은 “혼자 책을 읽다 보니 여성 작가 작품이나 여성 서사 소설처럼 익숙한 분야만 읽게 됐어요”라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자주 손이 가지 않던 남성 작가 도서나 문학상 수상작도 도전할 수 있었죠”라고 얘기했다. 김 동문은 모임에서 읽을 책을 선정하며 독서 모임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는 “이상문학상부터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까지 시대순으로 한국문학을 읽었어요”라며 “그때쯤엔 국내 주요 작가와 작품 이름을 거의 다 외웠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김 동문은 시, 해설, 평론 등 여러 장르의 신간 작품을 수록한 문예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문예지에선 아직 단편선 출간 전인 작가의 단편소설을 미리 읽어볼 수 있었어요”라며 “한국문학의 최신 동향을 알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지난 6일(월) 본지 기자단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의 모습이다.
▲지난 6일(월) 본지 기자단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의 모습이다.

작가로 등단한 편집자
김 동문은 대학을 수료한 후 지난 2016년 민음사 한국문학 편집자가 됐다. 그는 책과 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판사 편집자에 지원했다. 김 동문은 “독서를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라며 “스스로의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했죠”라고 말했다. 김 동문은 문예지를 읽으며 한국문학 편집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는 “독서 모임에서 읽은 문예지로 한국문학을 공부한 보람이 있었어요”라며 “한국문학을 편집하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미리 읽어볼 수 있어 좋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입사 후 김 동문은 타인의 글에 온 신경을 쏟으며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다른 작가의 신간을 완성할 땐 진심으로 기뻤지만 마음속엔 ‘내 책을 갖고 싶다’란 생각이 있었죠”라며 “이때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어요”라고 얘기했다. 

김 동문은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나주에 대하여」로 등단해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편집자로 근무한 지 6개월에서 1년이 되던 시기엔 퇴근 후 글쓰기 수업을 듣거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작가에 도전할 기간을 제한해 둔 덕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김 동문은 “처음 단편소설을 써봤던 24살부터 딱 10년만 작가에 도전해보자고 자신과 약속했어요”라며 “정해진 기간에만 몰두하면 된단 생각에 3년간 끊임없이 공모전에 응모했죠”라고 말했다. 꾸준한 도전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김 동문은 “처음엔 A4 한쪽을 채우기도 힘들었어요”라면서도 “퇴근 후 조금씩 써 내려간 소설이 책상 위에 쌓였을 땐 마음이 든든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선 소식을 들은 김 동문은 이 사실을 믿지 못했다. 그는 “등단이 취소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어요”라며 “제가 정말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 더 놀랍고 기뻤죠”라고 얘기했다.
 

지난 해 10월 26일(수) 발간된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의 첫 단편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표지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지난 해 10월 26일(수) 발간된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의 첫 단편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표지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지난 8월 8일(월)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이 발간한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표지다. (사진제공=스위밍꿀)
지난 8월 8일(월)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이 발간한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표지다. (사진제공=스위밍꿀)


작가로 등단한 김 동문은 2022년엔 단편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출간하고 올해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를 세상에 선보였다. 「나주에 대하여」는 ‘사랑하는 사람의 전 애인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란 궁금증으로부터 탄생했다. 그는 “소설 소재를 구상할 땐 독특하거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요”라며 “특수한 상황에서 저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 볼 수 있어 재밌죠”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소설인 「공룡의 이동 경로」는 「나주에 대하여」와 같이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인물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친구 사이였다가 멀어진 인물을 다뤄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표현하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책을 품은 삶
학창 시절부터 김 동문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다. 문학 편집자로 일하며 하루 종일 글을 다루지만 퇴근 후에도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전자기기와 다른 책의 매력에 집중한다. 김 동문은 “책은 충전하지 않아도 언제든 펼칠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김 동문은 바쁜 일상에서도 책을 완독하기 위해 일과 중 틈틈이 시간을 낸다. 그는 “주말엔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반절이나 읽어 버려요”라며 “끝까지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책만의 매력을 좋아해 완독을 즐기는 편이죠”라고 얘기했다.

그는 앞으로도 편집자와 작가 두 가지 삶에 모두 충실할 예정이다. ‘편집자 김 동문’의 목표는 ‘재밌는 책 만들기’다. 그는 “작가와 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출간까지 완주하며 큰 보람과 행복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작가 김 동문’은 ‘의심이 적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 볼 계획이다. 그는 “습관적으로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저처럼 「나주에 대하여」와 「공룡의 이동 경로」에서도 의심이나 걱정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요”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향한 의심이 사라져 이젠 연인, 친구 사이처럼 견고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라고 설명했다.

김 동문은 대학생이 소설을 읽으며 위로를 얻길 바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김 동문에게 소설은 변치 않는 안식처였다. 그는 “대학 시절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어쩔 수 없이 상처받기도 하죠”라며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긴 아픔을 소설로 치유하길 바라요”라고 얘기했다. 작가나 출판사 편집자를 꿈꾸는 학우들에게 김 동문은 자신의 취향을 많이 알아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작품을 접해보고 그중 가장 선호하는 분야를 생각해 보세요”라며 “어떤 글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길 바라요”라고 덧붙였다.


김화진(한국어문 17졸) 동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작가가 되기까지 수차례 신춘문예에서 탈락했다. 그럼에도 책에 둘러싸여 일할 수 있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이 있었기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김 동문은 “제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코 책이라고 답해요”라며 “책을 가까이하는 직업을 가진 덕에 숱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것의 곁에 있는 일,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 김 동문의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과연 무엇을 가장 오래 곁에 두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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