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프랑스 니스에서 마주한 지중해다.
▲프랑스 니스에서 마주한 지중해다.

지난 7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2년 전부터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기 시작해 올해는 길게 혼자만의 여정을 보내기로 다짐했다. 지난해 겨울 북유럽에 다녀오고 나선 마음이 오랫동안 반짝거렸다. 일상에 돌아와서도 여행했던 기억만 떠올리면 마음이 충만해졌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착륙할 때의 두근거림과 인천공항을 향할 때의 아쉬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사람들이 그토록 여행을 가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이번 여행은 스페인에서 일주일,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일주일, 그리고 남은 기간엔 동유럽에서 지내는 일정이었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계획이었고, 국내에서도 그만큼 긴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다소 긴장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설렘과 더불어 불안감도 컸다. 유산균 가루나 안정제 때문에 각국의 블랙리스트(Blacklist)에 오르는 상상을 하거나, 열차 파업으로 이동 수단이 막혀 고생했단 이야기를 들으면 지레 겁이 났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저녁에 해변을 거닐다 인종차별을 당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선베드(Sunbed) 옆자리 사람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해지기도 했다.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불친절한 직원이 있는 한편, 음성 번역기까지 사용하면서 세탁기 사용법을 설명해 준 동네 주민도 있었다. 좋은 곳에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전부 일어난다. 헤어진 지 두 달이 넘도록 예술에 대한 문자를 주고받았던 뉴욕 아주머니와 바닥에 물을 조금 흘렸다고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던 프랑스 할머니 모두 한 지역에서 만났듯이 말이다.

바르셀로나 식당에서 먹은 문어숙회 요리와 류블랴나 제과점에서 먹은 초콜릿 무스 케이크는 지금까지도 생각나고 군침이 돈다. 눈부셨던 돌로미티 전경은 각막을 태울 듯 내리쬐던 햇볕의 감각을 잊게 했다. 호스텔 숙소에 태풍이 들이쳐 잠들지 못한 밤엔 다른 나라 친구들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쁜 일이 필자의 남은 하루를 망가뜨리려고 해도 악을 쓰고 그 반대편으로 가면 더 좋은 하루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재밌는 공연을 보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떠올랐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처럼 다른 곳에서 다른 시선을 가지고 나서야 ‘좋은 마음’의 가치를 깨달았다.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법도 몸소 배웠다. 마냥 도피하고 싶던 일상에서도 소중함을 발견하면 정처 없이 흘려보내는 현재에 충실해진다.

법 20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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