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석유공사는 지하에 매장돼 있는 수소인 자연수소(Natural Hydrogen) 탐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자연수소는 화석연료처럼 땅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수소를 땅속에서 얻는단 상상을 해본 적 있을까.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친환경 에너지원, 자연수소를 알아보자.


에너지계 신예
자연수소(Natural Hydrogen)는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수소다. 번역에 따라 천연수소라고도 불린다. 자연수소는 수소(H) 원자 2개가 결합한 H2 형태, 즉 원소 상태로 땅속에서 분출된다. 지표면에 구멍을 뚫는 탐사 방법인 시추를 이용해 자연수소를 얻을 수 있다. 차지혜 강원대학교 지질학과 지하수토양환경연구실 연구원은 “자연수소는 미래를 위해 주목해야 하는 청정에너지다”고 말했다.
 

▲물(H2O)이 수소(H2)와 산소(O2)로 분해되는 과정을 표현한 화학식이다. (사진출처=한국화학연구원)
▲물(H2O)이 수소(H2)와 산소(O2)로 분해되는 과정을 표현한 화학식이다. (사진출처=한국화학연구원)

자연수소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수소의 한계를 보완한다. 수소는 지구상에서 물(H2O), 메탄(CH4)과 같은 화합물 형태나 땅속에 묻힌 자연수소 형태로 존재한다. 화합물과 결합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화합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선 탄소(CO2) 배출이 불가피하며 막대한 비용도 발생한다. 반면 원소 상태인 자연수소는 별도의 분리 과정 없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탄소가 배출되지 않으며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자연수소는 우연한 발견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는 지난 1888년 자연수소를 최초로 거론했다. 그러나 당시 화석연료 연구에만 관심이 집중돼 자연수소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2012년 말리 석유회사 회장의 우연한 호기심이 자연수소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1987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발생했던 기이한 자연 현상에 흥미를 느꼈다. 말리에서 지하수 공사 중의 폭발로 낮엔 푸른색을, 밤엔 금색을 띠는 빛이 관찰됐다. 불빛의 원인은 지하수 구멍에서 분출되던 수소였다. 석유회사는 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의 구멍에서 흘러나온 기체의 98%가 자연수소란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자연수소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2018년부턴 연구와 탐사도 시작됐다.
 

▲땅속 자연수소가 생성되는 세 가지 환경이다.
▲땅속 자연수소가 생성되는 세 가지 환경이다.


자연수소 탐사기록서
자연수소는 크게 세 가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생성 환경은 ▶방사선 분해 ▶사문석화 작용 ▶지각변동 발생 지역이다. 지각에 포함된 우라늄(U), 토륨(Th)과 같은 방사성 물질은 *자연붕괴되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방출된 에너지는 수소와 산소로 구성된 물 분자를 쪼개 자연수소를 만든다. 생성 원인의 80%를 차지하는 사문석화 작용은 온도가 높고 압력이 큰 환경에서 발생한다. 철(Fe)이 풍부한 맨틀 암석은 물 분자를 만나 **산화하며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자연수소가 생성된다. 지각변동 발생 지역도 대표적인 생성지다. 지구 내부 외핵이나 맨틀에 존재하던 자연수소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지각의 경계면으로 상승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다. 

자연수소 매장량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매장량을 확인하기 위해선 먼저 지각 속 자연수소의 존재 여부를 알아야 한다. 존재 확인 방법으론 직접 측정과 지질학적 조사, 지구화학적 조사가 있다. 직접 측정은 땅에 구멍을 뚫어 자연수소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는 방식이다. 지질학적 조사에선 특정 지각의 지질 특성을 연구한다.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로 수소가 출현하는 지역을 식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지각에서 자연붕괴가 관찰됐다면 그 지역에선 방사선 분해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수소 생성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지구화학적 조사에선 지하수, 토양, 암석 등에서 수소 농도를 측정하고 성분을 분석한다. 이후 각 지역의 수소 농도를 비교해 수소 존재 가능성을 가진 지역을 선별한다. 수소 농도가 높게 나타나면 자연수소가 존재한단 증거가 될 수 있다.

전 세계 여러 국가가 자연수소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지구 전체 지각의 수소 생성량을 조사했다. 해당 조사에선 현존하는 수소량 중 10%만으로도 전 인류가 수천 년간 생활할 수 있단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올해 9월 자연수소 추출 기술 개발에 2천만 달러(한화 270억)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호주는 자연수소를 직접 채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호주의 자연수소 개발 신생기업 ‘골드하이드로젠(Gold Hydrogen)’은 올해 10월에 진행한 첫 시추에서 소량의 자연수소를 수집했다. 골드하이드로젠은 이번달 진행될 2번째 시추에서 지하 매장량을 정확히 확인할 계획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수백 곳에서 자연수소가 발견되고 있다. 확인된 지역은 유럽, 미국, 캐나다 등이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우 전력 및 가스 생산업체가 본격적인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자연수소 탐사를 시작했다. 4월 7일(금) 한국석유공사는 국내에서 자연수소 발생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탐사엔 한국석유공사가 최초로 개발한 ‘자연수소 탐침장치’가 사용됐다. ‘자연수소 탐침장치’를 이용하면 지하에 수소 기체가 존재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김용헌 한국석유공사 글로벌기술센터 기술전략팀 팀장은 “현재 자연수소가 발견된 지역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지역을 탐사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더욱 성장할 미래수소
자연수소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연수소 상용화를 위해선 개념이 먼저 정립돼야 한다. 차 연구원은 “자연수소의 발생 과정이나 원리를 연구한 자료가 부족해 심화적인 탐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가 더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의미한 연구 성과를 도출해야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정부가 연구 비용을 부담하기 전까지 투입되는 비용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전 세계는 자연수소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은 기존의 ***광업법을 자연수소 연구에 적용해 정부의 탐사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해당 법률을 적용한다면 기업은 정부 지원으로 자연수소를 탐사할 수 있다. 2021년 출범한 자연수소 정상회의 ‘에이치넷 서밋(H-NAT SUMMIT)’에선 세계 각국이 모여 연구 결과를 공유하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석유공사가 협력할 수 있는 국내 산업계, 학계, 연구 기관을 찾는 중이다. 김 팀장은 “기업, 학교, 연구소 등 넓은 범위의 전문가와 만나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개인의 호기심과 끊임없는 탐구로 발굴된 자연수소는 청정에너지 산업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에너지원의 등장은 탄소 중립을 위해 노력하던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자연수소 연구는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머잖아 수소 산업을 크게 발전시킬 것이다. 자연수소가 하나씩 일궈낼 놀라운 변화를 기대해 본다.

*자연붕괴: 방사성 원소의 원자가 자발적으로 α입자·β입자 등을 방출하며 다른 원소가 되는 현상임.
**산화: 어떤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거나 수소를 잃는 일을 의미함.
***광업법: 광물 자원을 합리적으로 채굴하기 위해 광업에 관한 기본 제도를 규정한 법률을 뜻함.

참고문헌
차지혜, 이진용. (2023).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자연 수소의 발생, 기작과 분포에 대한 고찰. 지질학회지, 59, 513-526.
Lu Wang, Zhijun Jin, Xiao Chen, Yutong Su, Xiaowei Huang. (2023). The Origin and Occurrence of Natural Hydrogen.
Prinzhofer Alain, Tahara Cissé Cheick Sidy, Diallo Aliou Boubacar. (2018). Discovery of a large accumulation of natural hydrogen in Bourakebougou (Mali). International Journal of Hydrogen Energy.
Philip J. Ball, Krystian Czado. (2022). Natural hydrogen: the new fron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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