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다가오는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다. 쌀쌀하고 쓸쓸한 이맘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 당시 외딴섬 ‘이니셰린’에서 벌어지는 단조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절친인 파우릭과 콜름은 매일 함께 술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자신에게 말조차 걸지 말라고 경고한다. 파우릭은 하루아침에 자신을 적대시하는 콜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콜름은 의미 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파우릭과의 관계에서 권태를 느껴왔다. 그는 남은 인생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을 위해 쓰려 한다. 

모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이 영화는 ‘이유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과 ‘의미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아일랜드 내전에 관한 심오한 비유는 잘 모르겠다. 필자에겐 그저 사람 사이의 일을 다룬다고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파우릭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 역시 ‘의미 없음’보단 ‘이유 없음’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 필자도 파우릭과 같은 상황을 겪은 적 있다. 상대를 계속 찾아갔고 연락해 ‘제발 이유만이라도 알려줘’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은 순간 깨달았다. 어떤 방식이든 상대 입에서 나올 것은 ‘네가 싫어졌다’는 말이었음을. 누군가 좋아지는 데 이유가 없듯, 싫어지는 데에도 꼭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었다.

콜름은 나쁜 사람인가? 결코 그렇다 말할 수 없다. 차갑도록 매정한 그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저 맞지 않았을 뿐이다. 모든 관계엔 유효기간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유효기간이 지났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파우릭처럼 문을 두드리며 노력해야 한다. 물론 최선을 다했는데도 상대의 마음이 요지부동이라면 그땐 말끔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파우릭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애원하고 절망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끝내 단념한다. 

세상은 마치 콜름처럼 갑작스레 모질고 냉정하게 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영화 초반의 파우릭처럼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다정하자’.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똑똑한 개인주의자와 다정한 바보 중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쌀쌀해진 가을 속에서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니셰린의 밴시’를 추천한다.

영어영문 22 조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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