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약국에 재치 넘치는 약사가 등장했다. 이미선 동문(약학 86졸)은 환한 미소로 “Nice to meet you”란 인사를 건네며 본지 기자단을 맞았다. 이곳은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미아리 텍사스(Miari Texas)’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고 적힌 노란색 팻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강한 약국’은 하월곡동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다. 이 동문은 20년 가까이 건강한 약국과 함께 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는 주민들에게 약사이자, 상담가이자, 또 다른 가족이다.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 동문을 만나보자.
 

▲서울시 성북구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 팻말이 보인다.
▲서울시 성북구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 팻말이 보인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접하다
이미선 동문(약학 86졸)은 서울 성북구 ‘미아리 텍사스(Miari Texas)’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 하월곡동은 성매매 집결지가 아닌 일반적인 동네 골목이었다. 이 동문은 “지금은 성매매 업소가 많지만 예전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미용실과 두부 공장도 있는 평범한 동네였어요”라고 말했다. 이 동문의 열 살 무렵, 동네에 술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몇 년 만에 수백 채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곳을 ‘집창촌’이라고 불렀다. 그는 성매매 여성의 삶과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랐다. 이 동문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변호사가 돼 성매매 여성들의 편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한 성매매 여성의 죽음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줬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옆집 언니가 개인 사정으로 세상을 등졌어요”라며 “성매매 여성이란 이유로 죽어서도 외면당하고 손가락질받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이 동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대학에 진학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이 동문은 “담임선생님께서 등록금을 내주신 적도 있어요”라며 “친구 아들을 가르치는 과외 자리를 소개해 주시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이 동문의 어머니는 그가 대학에 진학해 가정에 경제적인 보탬이 되길 바랐다. 이 동문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독하게 공부했다. 그는 “원래도 성적이 좋았지만 그때부터 시험 볼 때마다 등수를 10등씩 올렸어요”라며 “전교생 약 400명 중 5등 정도로 졸업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물리를 전공하고 싶었던 이 동문은 어머니의 권유로 본교 약학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평생 먹고 살 직업이 있어야 한다며 약대 진학을 권유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이 동문은 전공 공부보단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 시절 성매매 여성이 억압받는 모습을 접한 기억은 자연스레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학생운동에 참여한 일은 그에게 인생 중 가장 잘한 일로 꼽힌다. 이 동문은 “학생운동은 옳은 일이자 인간답게 사는 길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를 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8개월간 공주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약사
이 동문은 본교 약학 대학을 졸업한 후 약사가 됐다. 졸업 후 그는 인천에서 ‘가나 약국’을 운영했다. 그는 “약대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약국을 차렸어요”라고 설명했다. 이 동문은 그곳에서 10년간 약국을 운영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건강한 약국’을 차렸다. 건강한 약국은 건강한 세상과 사회를 꿈꾸는 그의 바람이 반영된 이름이다. 약국 운영 초기엔 성매매 여성을 돕겠단 큰 사명이 없었다. 그는 “처음엔 저 사느라 바빴어요”라며 “성매매 여성들이 안쓰러웠지만 제 삶이 버거워 크게 신경 쓰지 못했죠”라고 말했다. 이 동문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한 계기는 2005년 하월곡동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이다. 그의 약국 건너편에 위치한 성매매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성매매 여성 다섯 명이 숨졌다. 그가 친하게 지내던 여성도 함께였다. 이 동문은 사고 현장과 사후 처리 과정을 지켜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때부터 성매매 여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건강한 약국엔 다양한 손님이 찾아온다. 약국을 찾는 주 고객은 성매매 여성, 주변 상인, 독거노인, 노숙인이다. 이 동문은 자신의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는 “약사가 아닌 ‘인간 이미선’으로 마음을 다해 손님을 대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손님에게 약 처방 외에도 의료적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다. 이 동문은 “소화제 하나 사러 온 손님에게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조언해요”라며 “약사로서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자 계속 공부하고 있죠”라고 말했다. 삶에 지친 손님에겐 조언과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 동문은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건넨 작은 도움이 그들의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남다른 다정함으로 약국을 운영하는 그에게 기억에 남은 손님이 있다. 성매매 여성으로 지내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그는 “성매매 여성으로 일하다 사회로 복귀하는 사람은 드물어요”라며 “그 손님은 미용을 배우고 미용사 자격증을 딴 뒤 이 동네를 떠났죠”라고 말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위험에 처한 적도 많다. 취객이 비아그라를 요구하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112를 제일 많이 부른 약사가 저일 거예요”라며 “무서울 때도 있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에 이곳에 자리 잡은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 있는 ‘건강한 약국’이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에 있는 ‘건강한 약국’이다.

이 동문은 약국과 함께 ‘건강한 상담센터’와 ‘건강한 문고’를 운영한다. 그는 상담을 통해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자 건강한 상담센터를 차렸다. 그의 약국엔 건강한 상담센터 간판이 함께 붙어있다. 이 동문은 “동네 주민이 아니어도 간판을 보고 상담을 받으러 오기도 해요”라며 “직접 찾아오기 어려운 손님을 위해 전화 상담도 운영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2년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약국 왼쪽에 놓인 책꽂이엔 ‘건강한 문고’가 있다. 그는 주민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준다. 그가 재밌게 읽은 소설과 수필 등 가벼운 주제의 책이 대부분이다. 이 동문은 “책은 어렵고 깊은 주제를 고민하는 기회를 줘요”라며 “주민이 원하는 책은 구매 신청을 받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건강한 약국’ 안쪽에 있는 ‘건강한 문고’다.
▲‘건강한 약국’ 안쪽에 있는 ‘건강한 문고’다.

나의 토대는 단단한 마음
이 동문의 좌우명은 ‘지금 여기서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한다(Now and here, I can do my best)’다. 그는 어떤 일이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한부라고 생각해요”라며 “한정된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낸 후 스스로에게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매사에 열심인 그의 태도는 남을 도울 때도 드러난다. 그는 본교 청소 노동자에게 도시락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는 “식사를 지원하더라도 가장 비싼 도시락을 사고, 선물 상자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 예쁘게 포장해요”라며 “힘들고 지친 이들을 도와줄 때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죠”라고 말했다. 

이 동문은 외면보다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소망하는 ‘부자’의 모습은 ‘친한 친구들과 맛있는 한 끼를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좋아하는 책을 사서 읽는 삶’이다. 그는 “예쁜 옷이나 명품엔 욕심이 없어요”라며 “지금 입고 있는 바지도 수유시장에서 5천 원에 샀죠”라고 말했다. 이 동문은 현대 사회에서 외면이 강조되는 것에 대해 허탈함을 드러냈다. 그는 “명품이나 다이어트 등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회를 보면 안타까워요”라며 “외적인 것을 가꾸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라요”라고 말한다. 이 동문은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그는 “남들과 비교하기보단 주어진 일에 만족하며 사는 훈련이 필요해요”라고 얘기했다. 그는 “순탄치 못한 인생을 겪으며 물질과 외적인 삶이 허망하고 부질없단 걸 느꼈어요”라며 “이 깨달음이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죠”라고 말했다.

▲이미선 동문(약학 86졸)이 ‘건강한 약국’에서 본지 기자단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선 동문(약학 86졸)이 ‘건강한 약국’에서 본지 기자단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본교 학우들에게 따뜻하고 강인한 마음을 모두 갖춘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이 동문은 “제 후배들이 교내에서 청소 노동자분들이나 경비원분들을 뵈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으로서 사회에 진출할 실력을 갖출 것을 강조한다. 그는 “여전히 세상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이 존재해요”라며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라고 말했다.


이미선 동문(약학 86졸)은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강조한다. 이 동문에게 그것은 건강한 약국이다. 그는 “힘들고 지친 이들을 도울 수 있어 감사한 삶이에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그는 건강한 약국에서 손님을 맞는다. ‘저녁에 먹은 게 체한 것 같다’라고 말하는 손님에게 이 동문은 손을 잡으며 설명한다. “제가 잡은 데가 합곡혈인데, 아프죠. 체해서 그래요. 자주 눌러주세요. 기름기 있거나 차가운 음식 드시지 말고 따뜻한 음식 드세요.” 오늘 하루를 돌아보자.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동문의 인생을 본받아 주어진 인생을 열정적이고 다정하게 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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