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차장 기자 시절, 본지는 필자에게 기쁨도 슬픔도 아니었다.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필자가 작성한 기사가 발간된 날엔 작게나마 본지에 보탬이 됐단 생각에 뿌듯했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기 위해 집에 보관할 신문 한 부를 가방에 넣었다. 하지만 발간 당일 지면 피드백 회의를 거친 신문의 도착지는 필자의 집이 아닌 종이 수거함이었다. 타인의 입으로 이 기사가 완벽하지 않단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기사를 완성했단 보람과 자랑스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인들이 기사를 궁금해해도 숨기기 바빴다. 동료 기자들이 본인의 자랑스러운 기사를 나열할 땐 입도 열지 못했다.

부장 기자로 취임한 후 피드백을 비난으로 받아들이면 취재 당시 느낀 성취와 보람을 잊게 된단 사실을 깨달았다. 기사를 향한 피드백은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기대와 애정이다. 기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취재한다. 기사 하나하나엔 기자의 열정과 고뇌, 땀과 눈물이 묻어있다. 세상에 완벽한 기사는 없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기사의 가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완벽한지’가 아니라 ‘기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기자 본인이 최선을 다해 만든 기사라면 높이 평가할 만한 기사다.

매 호수를 발간하며 수많은 업무를 감당하는 중이다. 아무리 업무가 많아도 더 나은 신문을 완성하기 위해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더 나은 신문이란 독자에게 친절한 신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기사가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 고민으로 글자 하나, 문장 하나에 울고 웃는다. 밤새 불태운 열정이 동료 기자들의 뼈아픈 피드백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사수로서, 담당 기자로서 완성해 낸 모든 신문이 여전히 자랑스럽다. 본지 기자 모두의 ‘노력’이 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전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소중하다.

이제야 필자는 본인의 기사를 사랑해 주게 됐다. 다시 말해 본인의 노력을 인정하게 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기자에게 수고했단 말을 전한다. 신문이 눅눅해지는 계절이 왔다. 앞으로 본지에서 꾸려갈 푸르른 나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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