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의 가치를 카메라에 담는 영화감독이 있다. 다큐멘터리(이하 다큐)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고희영 감독이다. 그는 다큐 영화 <물숨>(2016), <시소>(2016), <불숨>(2019), <물꽃의 전설>(2023)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 베테랑 감독이다. 지난 3일(일) 본지 기자단은 <물꽃의 전설>의 상영을 앞두고 고 감독과 만났다. 다큐에 대해 얘기하는 고 감독에게선 자신의 삶과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방황을 마치고 다큐의 길로
고희영 감독은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고향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제주도가 아닌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었어요”라며 “제주를 벗어날 수 없어 막막했죠”라고 말했다. 청소년기 서울로 진학한 친구들과 달리 제주도에 머물러야 했던 고 감독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방황의 시간 동안 고 감독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강인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극복하는 법도 함께 배웠죠”라고 말했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고 감독은 학부 시절부터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학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재능이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고 감독은 “호기심에 학보사에 지원했는데 합격했어요”라며 “학생 기자로 일하며 신문 기자를 꿈꾸기도 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학보사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대학교 3학년부터 제주MBC 방송작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제주MBC에서 고 감독은 자신의 글솜씨를 제대로 뽐낼 수 있었다. 방송과 영상, 다큐를 처음 접한 것도 그때였다. 그는 “당시 제주도를 주제로 하는 다큐 제작에 참여했어요”라며 “영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단 사실이 매력적이었죠”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다른 직업으로 활동할 때도 꾸준히 다큐를 생각했다. 그는 지난 1989년 대구MBC로 이직해 사회부 일간지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방송사는 여성 기자에게 보수적이었다. 고 감독은 “여자란 이유로 활동을 제한하는 기자 대신 더 넓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라며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방송작가 경험을 발판 삼아 1990년 서울SBS로 이직했다. SBS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메인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 감독은 “취재를 위해 강력범죄자를 미행하며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어요”라며 “힘들기도 했지만 사회 모순을 파헤치며 보람을 느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몇 년간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 방송작가 일에 피로감을 느꼈다. 고 감독은 “분명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루했어요”라며 “어느 순간부터 계속 다큐를 만들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타지에서 떠올린 내 고향 여성들 
그는 다큐 영화를 향한 열망을 품고 중국으로 떠났다. 방송작가란 안정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고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좋아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다녔던 대학 ‘북경전영학원’에서 영화를 배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대에도 고 감독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가 말렸지만 다큐를 향한 제 열정을 막을 수 없었죠”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유학 시절 중국을 배경으로 한 다큐를 제작해 방송사에 납품했다. 그 중 <중국 음식에는 계급이 있다>(2004), <메이드 인 차이나, 왜 세계를 제패하는가>(2007)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 그는 해녀란 새로운 다큐 소재를 떠올렸다. 중국 구이저우성의 모계 사회 부족을 취재할 때였다. 부족민 중 한 명이 고 감독에게 ‘당신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나요’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을 듣고 어머니와 제주의 여성들을 떠올렸다. 이후 우연히 마주한 영국인 탐험가와의 대화 끝에 고 감독은 제주 해녀 이야기를 영상에 담기로 결심했다. 그는 “탐험가가 해녀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그들을 취재하면 좋은 다큐가 만들어질 거다’라고 조언했죠”라고 말했다. 2007년 영화사 ‘숨비’를 만든 고 감독은 2008년부터 우도와 베이징을 오가며 <물숨>(2016)촬영을 시작했다.

해녀 취재는 마냥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장비를 챙겨 우도로 갔지만 2년간 촬영할 수조차 없었다. 제주도엔 해녀들의 억센 성격에서 유래된 ‘우도 해녀가 앉은 자리엔 풀도 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우도 해녀들은 외지인인 고 감독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그는 “앞에서 카메라만 들어도 해녀들에게 욕을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촬영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고 감독은 우도를 떠나기 전 해녀들이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광경을 본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 해녀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다시 촬영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죠”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다시 장비를 펼치고 해녀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짐을 들어주고 잔심부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 감독은 우도 해녀들과 무사히 영화를 완성했다. <물숨>은 해녀의 삶과 그들만의 공동체를 조명한 다큐 영화다. 해당 작품은 해녀가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데 일조했다. 그 공로를 인정해 제주도는 고 감독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고 감독의 대표작 (2016)의 포스터다.
▲고 감독의 대표작 (2016)의 포스터다.
▲고 감독의 두 번째 해녀 영화 (2023)의 포스터다.
▲고 감독의 두 번째 해녀 영화 (2023)의 포스터다.

 

두 발로 일궈낸 감독의 눈
고 감독은 ‘머리가 아니라 발을 믿으라’는 좌우명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그는 방송작가 시절부터 출연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고 감독은 “목표를 이루고자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죠”라고 말했다. 그의 열정이 담긴 책 「다큐멘터리 차이나」에서도 신념을 느낄 수 있다. 고 감독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중국 농민공의 삶을 취재했다. 촬영 제재가 심한 중국이었음에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조사했다. 고 감독은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촬영을 이어 나갔어요”라며 “농민공의 명절 귀향을 직접 체험하고자 발 디딜 틈 없는 기차에 올라타기도 했죠”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고 감독에겐 여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다. 그는 주체적인 제주 여성 이야기가 담긴 <사월, 초사흘>을 제작하는 중이다. <사월, 초사흘>은 제주 4·3 사건의 여성 희생자를 조명하는 영화다. 고 감독은 “소외된 여성 희생자를 중심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싶었어요”라고 영화 주제를 설명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제주도 영화 학교 설립이다.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제주도 학생들을 위해 영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학우들에게 ‘자신만의 눈’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란 의미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속에 담긴 뜻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 감독은 ‘제대로 보는 것’의 예시로 해녀를 언급했다. 그는 “나만의 시선으로 해녀를 봤어요”라며 “그들 사이의 계급이 있단 사실을 포착해 이야기로 담을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시각’을 갖추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고 감독은 ‘독서’와 ‘영화 감상’을 추천했다. 그는 “독서는 시야를 넓혀주는 수단이에요”라며 “책에서 새로운 시각을 얻길 바라요”라고 강조했다.


너무나도 사소해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카메라에 담는 고희영 감독의 다짐은 누구보다도 굳세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 감독은 “백발이 돼도 촬영하고 싶어요”라며 “해녀들의 꿈이 바다에서 숨을 거두는 일인 것처럼 저도 목숨 바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오랜 방황 끝 다큐멘터리에 삶을 바친 그처럼, 삶을 바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자.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