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숙케치]

▲부산 광안리 해변의 윤슬과 노란 파라솔이다.
▲부산 광안리 해변의 윤슬과 노란 파라솔이다.


부산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그래도 바다는 답답한 서울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도망일 뿐이었던 여행은 부산이란 도시와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다. 

부산에 고작 이틀 있었지만 서울로 돌아간단 게 믿기지 않았다. 돌아가는 기차에선 마치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인 듯 굴었다. 바다를 오래 바라본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감상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근처에 머물렀단 이유만으로 부산에 정이 붙어버린 모양이다. 바다가 감상적인 이유는 인간과 닮아서가 아닐까. 

이 기억은 금방 잊힐 수도 있다. 한 달 혹은 일주일, 어쩌면 하루. 그렇고 그런 시간 속에서 난 바다를 잊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귀 뒤에 남은 모기 자국으로, 이 여행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남길 바란다.

사실 인상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고 혼자 처음 떠나는 여행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걸까. 그토록 고대하던 바다는 해수욕장이 돼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고 태양 빛은 타버릴 듯 내리쬈다. 바다는 겨우 실내에 앉아 곁눈질로 훔쳐봤을 뿐이다. 

부산 여행의 마지막으로 방문한 남포동 시장 골목에선 ‘세상’을 찾았다. 닫혀있는 가게가 늘어선 국제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은 ‘세상’ 그 자체였다. 국제시장 아저씨의 망치질 소리는 세상을 울리는 괘종시계였으며 작고 고독한 책방은 온갖 인생이 모인 곳이었다. 필자는 삶과 세계가 담긴 남포동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켰다.

돌아봐야 아름다운 게 영 아쉽다. 그것마저 인생 같다. 지나간 아름다움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스치는 사랑이 없도록 꼼꼼히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다. 그럼에도 돌아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벌써 다음을 걱정하고 있다. ‘새롭게 찾은 도피처가 더 이상 도피처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란 쓸모없는 걱정. 오랜만에 찾아온 아름다움도 잠시였다. 불현듯 찾아온 걱정이 날 불안하게 했다. 그러다 문득 그 불안마저 사랑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 부산 여행이 일종의 도피였다면 다음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바다, 책, 세상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여행의 의의는 사랑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는 건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단 뜻이다. 타성에 젖어버린 삶에서도 숨어있는 새로움에 행복해하고, 감춰진 사랑을 발견하고 싶다. 우리의 인생이 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기초공학 23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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