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에서 숙대입구역 방향으로 언덕을 내려갈 때면 도로 넘어 보이는 마을이 있다. 바로 용산구 후암동 해방촌이다. 과거 판자촌이었던 이곳은 1950년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해방촌은 최근 카페나 식당이 늘어 관광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판자촌에서 이색 동네로 자리매김한 해방촌을 본지 기자단이 직접 걸어 봤다.

 

▲‘1945 용산 해방촌’ 구조물이 해방촌의 입구를 알리고 있다.
▲‘1945 용산 해방촌’ 구조물이 해방촌의 입구를 알리고 있다.

해방 이후 가장 북적인 공간
해방촌은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와 후암동 고지대 일대를 지칭한다. 지난 1945년 해방 이후 마을이 형성돼 해방촌이란 이름이 붙었다.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용산 02번 버스를 타고 6호선 녹사평역 근처 한신아파트에서 내렸다. 승강장에 도착하니 ‘1945 용산 해방촌’이란 문구의 구조물이 해방촌의 입구를 알렸다. 구조물 건너편엔 항아리 집 ‘한신옹기’가 있었다. 서울미래유산이란 간판을 내건 한신옹기는 1959년부터 해방촌을 오가는 이들을 맞이해 왔다. 한신옹기의 옹기가 옛 미군 부대 외벽을 따라 줄지어 있는 모습이 정겨움을 더한다. 언덕을 오르니 이국적인 가게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방촌은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이태원 옆에 위치해 많은 외국인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찰리스 그로서리(Charlie’s Grocery) 식료품점에선 다국적 식료품과 비건(Vegan)을 위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칵테일바와 정통 모로칸 음식 전문점 역시 거리에 이국적 분위기를 더했다.

▲항아리 집 ‘한신옹기’의 옹기들이 옛 미군 부대 외벽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항아리 집 ‘한신옹기’의 옹기들이 옛 미군 부대 외벽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해방촌은 북한의 종교 탄압을 피해 월남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들이 천막으로 세운 교회에서 출발한 ‘해방교회’는 해방촌과 역사를 공유한다. 얕은 건물이 줄지은 해방촌 골목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우뚝 솟은 해방교회를 찾아볼 수 있다. 특별한 교회가 하나 더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74호로 지정된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다. 6·25 전쟁 이후 해병대사령부가 세운 이 교회는 1959년 건립 당시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1973년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면서 건물은 오랫동안 창고로 이용되거나 방치됐지만 2000년대 들어 예배당의 기능을 회복했다.

▲높이 솟은 ‘해방교회’ 건물이 주변 건물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높이 솟은 ‘해방교회’ 건물이 주변 건물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해방교회를 지나 골목을 오르니 신흥시장 입구에 다다랐다. 신흥시장 일대는 해방촌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번창한 가내수공업 공장이 지역 발전의 중심축이었다. 그 결과 인구가 증가했고 시장 경제도 활발하게 성장했다. 해방촌 형성 초기엔 이곳에서 담배를 제조해 남대문 시장으로 유통했다. 이후 사업가와 구직자가 이곳으로 더 몰려들었다. 1960년대부턴 스웨터 가내수공업 공장이 들어섰다. 해방촌에 위치한 스웨터 공장은 전국 물량의 약 30%를 책임질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제조업이 자동화되면서 가내수공업은 쇠퇴했다. 동시에 거주 인구가 줄어 신흥시장은 전통시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 ‘신흥시장’의 내부로 연결되는 입구다.
▲ ‘신흥시장’의 내부로 연결되는 입구다.


역사를 품고 자리를 지키다
해방촌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다. 일제강점기 해방촌 일대는 일본군 기지, 사격장, 호국신사로 나뉘어 이용됐다. 6·25 전쟁 이후엔 미군정 관할지로 바뀌어 미군 부대가 자리했다. 이는 해방촌에 일본식 주택과 양옥이 모두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6·25 전쟁 이후 경성호국신사 터엔 숭실학교가 설립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숭실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단 이유로 폐교됐다. 신사가 허물어진 자리 위에 다시 건립된 숭실학교는 일제의 탄압에도 민족정신을 굽히지 않은 선조의 열망을 보여준다. 현재는 학교 건물이 남아있지 않지만 ‘해방타워’란 글씨가 적힌 석상과 상가 건물이 숭실학교 터를 채우고 있었다.

현재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해방촌의 시작은 판자촌이었다. 해방 이후 귀환민과 전쟁 이후 피난민은 이곳의 산비탈을 깎아 무허가 판자촌을 조성했다. 현재 해방촌 일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 중산층 빌라나 주택이 주를 이룬다. 동네 꼭대기에 이르니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옛 판자촌은 찾아볼 수 없고 주택이 즐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좁고 경사진 지형 특성상 여느 지역보다 건물이 밀집된 것처럼 느껴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의 수만큼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이곳으로 밀려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주민들의 애환을 되새길 수 있었다.

108계단 옆엔 높은 계단만큼이나 특별한 구조물인 경사형 승강기가 있다. 현재 해방촌 108계단 위 지대는 일제강점기 경성호국신사가 자리하던 곳이었다. 경성호국신사는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 후반인 1943년에 지어졌다. 전쟁에서 약세를 보이던 일본은 신사 정비를 통해 조선인 통제를 강화하고자 했다. 신사 정비에 동원된 우리 국민은 전사한 일본 장병을 추모하고 일본군의 승리를 기원해야 했다. 108계단은 참배를 위해 신사에 오르는 연결 통로였다. 해방 후 신사는 사라졌지만 108계단은 이 자리에 형성된 주택가를 잇는 통로로 쓰이고 있었다. 계단 앞에 도착하니 승강기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해방촌 주민들과 함께 승강기에 올라타니 계단의 규모만큼 길게 늘어선 벽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18년엔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며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이 높아졌다. 해방촌 인구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노인을 위한 조치다.

▲108계단에 설치된 경사형 승강기다.
▲108계단에 설치된 경사형 승강기다.


찾고 싶은 장소로 되살아난 해방촌
해방촌은 도시재생사업과 함께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해당 지역은 주민들의 생활 공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광객을 위한 이색명소로 떠올랐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엔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음식점과 카페가 자리했다. 고지대 아래 신흥시장 역시 도시재생사업 이후 옛 정취와 현대적인 분위기가 어우러진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신흥시장은 해방촌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유일한 전통시장이다. 옛 간판이 그대로 쓰인 상점과 젊은 감성의 팝업스토어(Pop-up Store), 그리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가게가 한데 어우러져 손님을 맞고 있었다. 오래된 타일과 벗겨진 페인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이 젊은 세대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신흥시장엔 옛 간판을 단 가게와 현대적으로 꾸민 가게가 공존한다.
▲신흥시장엔 옛 간판을 단 가게와 현대적으로 꾸민 가게가 공존한다.

새로 들어선 가게와 노포가 나란히 위치한 광경은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이다. 용산2가동 주민센터 앞 해방촌 오거리에서 해방촌 교회 방향으로 걸으면 줄지어 늘어선 가게와 식당이 나온다. 군데군데 빈 상가도 보이지만 현대식 간판과 70년대 고딕체 간판이 그대로 보존돼 강한 개성을 풍긴다. 다른 동네와 달리 이곳엔 프랜차이즈(Franchise)보단 옛날 풍 식당과 마트가 주를 이룬다. 열린 식당 문 안으로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 계신 한 어르신이 보였다. 이곳 식당은 식사 공간보단 마을의 일부로 함께 숨 쉬는 장소였다.

해방촌의 진가는 해가 지면 더욱 두드러진다. 밤이 찾아오면 서울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야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2010년대부턴 문화거리로 꾸며져 일과를 마친 시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과거의 모습을 보존한 해방촌에선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정취와 도심 속 운치를 느낄 수 있다.


해방촌은 일상에서 한 발 짝 물러나 휴식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과 아기자기하면서 정겨운 골목들. 여행하는 마음으로 거닐면 어디든 여행이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익숙한 등굣길도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면 이 역시 여행이 될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지쳤다면 전부 내려두고 본교 근처 자리한 해방촌을 찾아보자. 골목을 여행하며 느끼는 새로움이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지역이 도시 재활성화로 자산 가치가 상승해 저소득층 원주민은 거주지에서 밀려나고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는 현상이다.

참고문헌
김민애. (2017).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청년몰’ 사업을 도입한 복합문화시설 계획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안종철. (2011). 1930-40년대 남산 소재 경성호국신사의 건립, 활용, 그리고 해방 후 변화. 서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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