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모든 일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정답이 곧 최고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정해둔 답에 맞춰가며 안도감을 느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어린 시절엔 정답을 찾는 것도 쉬웠다. 동그라미 가득한 성적표만 있으면 최고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문이 어려웠다. 매번 새로운 일을 마주하며 올바른 답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8면의 신문을 완성하기 위해 수천 번의 선택을 마주하며 어느 것이 정답인지 고민했다. 매번 막막함에 한숨지었다.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란 상념에 사로잡혔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혹독하다. 과할 정도로 고민하고 고쳐야만 그나마 덜 후회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사소한 실수도 광활한 지면에선 중대한 오점이 되고, 분명 만족스러웠던 글에도 후회가 남는다. 서로의 아쉬움을 나눈 뒤엔 괜찮단 말을 건네며 다음으로 도약한다. 아쉬움이 곧 더 나은 내일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나아가지 못했을 테다. 그러나 필자에겐 언제든 손을 뻗어줄 동료들이 있다. 이들은 편집장이란 책임감에 짓눌린 필자를 일어서게 하고, 앞서 걸을 수 있도록 붙잡았다.

신문이란 결과물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누군가의 피와 땀을 헤아리게 됐다. 그 누군가도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했을 거란 생각에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다. 필자와 동료들이 지면 구석구석에 노력과 애정을 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곤 보람 혹은 아쉬움을 느낄 ‘그 누군가’에게 괜스레 동질감을 느낀다. 

본지에서 활동하며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란 말을 가장 자주 떠올렸다. 오랜 꿈이던 기자에 다가서기 위해 본지에 입사했으나 현재 필자의 목적지는 기자가 아니다. 대신 새로운 미래를 열 가지쯤 상상하게 됐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단 자신감이 생기면서부터다. 기자의 꿈을 잃었을 땐 본지 활동이 그저 ‘잘못 탄 기차’라고만 느껴졌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숙대신보 기자’란 이름으로 경험한 모든 일이 필자의 가능성을 열어준 열쇠가 됐다.

이젠 존재하지도 않는 정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저 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 더 많이 보고 듣고 고민한다. 이 기차가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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