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딸랑, 하고 울린다. 한 권의 책을 찾아온 사람이겠지. ··· 기쁜 마음으로, 그를 펼쳐 읽는 마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유희경 시인의 산문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에 등장하는 문구다. 혜화 동양서림 서점에 들어서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위트 앤 시니컬’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고객의 방명록과 빼곡한 시집 사이로 유희경 시인의 문학 세계를 엿봤다.


즐거움, 배움의 시작
유희경 시인은 문학 읽기와 쓰기에 뛰어난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즐겨 읽던 유 시인은 문학 작품 읽기에 특화된 학생으로 자랐다. 그는 “사람마다 문해력엔 차이가 있다”며 “남들이 운동이나 노래에 재능이 있듯 저는 책 읽기를 잘하는 학생이었죠”라고 말했다. 유 시인의 문학 글쓰기 재능은 그의 학창 시절 논술 과외 선생님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했어요”라며 “글쓰기에 재능이 있단 논술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도전했고 운 좋게 합격했죠”라고 얘기했다.

그는 글쓰기와 서사를 더 배우고 싶어 한예종 극작과에 진학했다. 서울예대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은 그의 학구열을 충족하기에 부족했다. 유 시인은 “극작과에선 이야기가 담긴 글쓰기를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라고 얘기했다. 한 수업에서 그에게 김소연 시인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찾아왔다. 김소연 시인은 예리한 시선으로 유 시인의 작품을 날카롭게 평가했고 이는 시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그는 “김소연 시인의 가르침이 시인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라며 “그를 만나며 시에 대한 제 잘못된 습관과 편견이 부서졌죠”라고 말했다.

그에게 한예종 생활은 즐거움이었다. 문학을 주제로 동료들과 수시로 나눈 대화는 유 시인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는 “제게 글쓰기는 놀이였어요”라며 “글 쓰고 책 읽는 일이 일상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죠”라고 말했다. 당시 행복했던 순간은 그에게 자양분이 됐다. 유 시인은 “주변 동료들과 ‘어떤 시인이 더 훌륭한지’ ‘자연주의 작품 중 가장 대단한 작품은 무엇인지’ 문학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어요”라며 “제 학창 시절은 너무 길고 짙어서 어떤 한 조각만 잘라내기 어려워요”라고 얘기했다.

시인이자 서점 지기
유희경 시인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엔 슬픈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는 유 시인의 독특한 태도가 부각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찾아온 슬픈 감정을 바탕으로 이 시를 썼어요”라고 말했다. 유 시인은 2011년 시집 「오늘 아침 단어」를 시작으로 시집과 에세이를 계속 출간했다. 이 시집으로 그는 ‘앞으로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볼 거야’란 출사표를 던졌다. 유 시인은 “「오늘 아침 단어」는 다신 얻지 못할 훈장이자 트로피죠”라며 “시집을 낸 후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단 부담감도 느꼈어요”라고 얘기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첫 시집을 바라보며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유 시인은 “제 인생이 책 한 권으로 정리되는 기분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죠”라며 “이 시집이 제 손을 떠나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보였어요”라고 말했다.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다.
▲시집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다.
▲시집으로 채워진 ‘위트 앤 시니컬’의 서가다.
▲시집으로 채워진 ‘위트 앤 시니컬’의 서가다.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유 시인은 2016년 시집 전문 서점을 차렸다. 약 9년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 업무를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유 시인은 “편집자는 업무 특성상 원고를 많이 읽어야 해요”라며 “시력을 잃고 예전처럼 편집자 일을 할 수 없어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를 그만둔 후 시를 쓰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신촌에서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다. 유 시인은 “대부분의 대형 서점에서 시집은 구석에 위치해요”라며 “위트 앤 시니컬은 시집만 판매하는 ‘시 전문점’이죠”라고 강조했다. 위트 앤 시니컬이란 이름은 동료 시인들과의 대화에서 탄생했다. 그는 “‘위트 있는 시’란 말을 다른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로 잘못 들어 웃음을 자아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양한 시집을 고르고 읽기에 최적화된 위트 앤 시니컬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안식처다. 1층에서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 시집으로 가득한 서가가 가장 먼저 보인다. 한 켠엔 방문한 사람 누구나 적을 수 있는 방명록이 있다. 카운터를 지나치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해당 공간에선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유 시인은 서점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 등의 SNS를 운영한다. 블로그엔 각종 공지와 시집 후기, 서점 일지와 함께 유 시인의 ‘출근 인사’가 올라온다. 해당 글엔 그가 서점에서 느낀 다양한 감상과 일상이 담겨 있어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유 시인은 고객의 눈에 비춰질  위트 앤 시니컬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는 “방문객이 이 서점을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봐 전전긍긍해요”라며 “서가 위치를 주기적으로 바꿔 고객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고자 노력해요”라고 말했다.

문학이 나의 일부가 되도록
위트 앤 시니컬에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를 형성한다. 유 시인은 북 토크, 시 비평 세미나, 시 창작 세미나 등 시와 관련된 행사를 기획한다. 그는 “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시라는 장르를 지지해 줄 여론을 형성하죠”라며 “함께 시를 배우고 시에 대해 고민해요”라고 말했다. 유 시인이 출판사에서 행사를 운영하던 경험은 다양한 행사 기획의 밑바탕이 됐다. 유 시인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행사를 기획하는 일이 가장 재밌었어요”라고 얘기했다. 해당 행사들은 시를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을 대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이 문학을 가까이 두는 삶을 살길 바란다. 유 시인은 사회가 바뀌어도 시 읽기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에 일침을 남기는 창구가 문학이고 시에요”라고 말했다. 유 시인은 사람들이 서점에서 직접 시를 고르길 바란다. 위트 앤 시니컬은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다. 그는 “각자에게 맞는 책을 찾아 나서는 생활이 일상이 되면 시가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어요”고 얘기했다.

유 시인은 시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학책 읽기를 강조한다. 편협한 시선으로 책을 고르면 특정 분야의 책만 골라 읽게 된다. 그는 “익숙한 장르만 읽기보단 젊을 때 많은 분야의 책을 도전해야 해요”라며 “문학으로 개인의 연륜을 쌓을 수 있죠”라고 말했다. 위트 앤 시니컬도 다채로운 장르의 시집을 취급하고 있다. 그는 “우리 서점을 방문하는 청년들의 기억에 위트 앤 시니컬이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희경 시인은 힘든 순간에 시가 함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인생이 미로를 빠져나가는 과정이라면 시가 ‘여기로 가보면 어떨까’란 말을 건네요”라고 말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단서를 쥐여주는 시. 다양한 고민의 순간에 생각의 방향을 말해주는 시를 내 손에 쥐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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