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일침]

뉴스는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기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특정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기능에 집중하는 것을 ‘기능주의’라 한다. 기능주의의 입장에서 뉴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리는 ‘정보 전달’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전달하려는 사건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고 해석해 사회 구성원이 사안에 대해 비슷한 인식을 갖도록 한다. 뉴스의 기능은 많지만 여기선 두 가지에만 집중해 보자.

제1428호도 앞선 존재 이유에 비춰 평가해 볼 수 있다. 이번 호는 사건의 해석보단 정보 전달의 기능에 머무는 모습을 보인다. 1면엔 ‘내일을 향한 다음 장, 숙명과 함께 열다’란 문구와 학생 두 명의 사진이 실려 이번 호가 창학특집 기념호이며 창학 특집 기사가 실림을 알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창학 특집’이란 작은 제목만 들어가 있을 뿐, 이번 창학 특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물론 정보가 글의 형태로만 전달되진 않는다. 사진도 강력한 정보 전달 수단이다. 때론 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는다. 그러나 1면의 전면을 할애한 사진도 창학과의 관련성이 모호하다. 커다란 창문으로 보이는 숲이 문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지면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1면은 뉴스의 ‘사회 현상 해석’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향은 제1428호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2면의 ‘창학 117주년 기념식, 숙명 가족 공로 표창해’ 기사는 창학 기념식이 있었고, 어떤 순서로 열렸으며, 누가 표창받았다는 내용이다. 사건과 관련된 정보는 전달됐다. 그러나 정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 독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의 해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4면 창학 특집에선 해석의 역할이 보다 두드러진다. ‘소복이 쌓인 배움의 시간’은 특히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숙명여대의 여성 교육이 변화한 의미를 독자들과 잘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117년을 넘어 마주한 우리의 교정’이나 ‘숙명에서 시작한 꿈의 여정’은 인터뷰만 담겼을 뿐 더 이상의 의미 해석이 어렵다. 사건의 의미 해석이 없을 때 독자들은 뉴스의 중요성을 가늠하기 어렵고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뉴스의 중요한 기능인 ‘사건 해석’을 잘 수행하는 숙대신보가 되길 바란다.

독자위원 이재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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