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 16일(화) 경복궁 근정전에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가 ‘2024 크루즈 패션쇼’를 개최했다. 문화재위원회는 ‘관계 전문가 조언을 받아 경복궁이라는 역사문화유산의 가치를 강화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확실히 고증받을 것’이란 조건으로 행사를 승인했다. 구찌는 국내뿐만 아니라 지난 8년간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에서 컬렉션을 발표해 왔다. 그런데 왜 이번 국내 패션쇼를 향해 ‘역사를 존중하지 못했다’란 여론이 쏟아지고 있을까. 

행사로 인해 문화재란 물질 자체는 훼손되지 않았지만 행사 장소 근처 주민들의 권리는 훼손됐다. 주최 측은 근정전 앞마당을 런웨이로 활용해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했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행사가 열렸기에 우리 궁의 아름다움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패션쇼의 마무리까지 긍정적이진 못했다. 행사 이후 종로구 송현동에서 열린 뒤풀이는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시끄러운 음악과 레이저 조명으로 인근 거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형 기업의 행사로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한 건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9일(토)엔 프랑스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서울 용산구와 서초구를 잇는 잠수교에서 '2023 프리폴(pre-fall) 컬렉션'을 열었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24시간 동안 잠수교 교통을 통제했으며 한강공원 주차장까지 출입을 제한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어떤 목적을 지닌 행사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이 우선돼야 한다. 구찌는 다음날 ‘지난 16일 패션쇼 종료 후 진행된 애프터파티로 인해 발생한 소음 등 주민들이 느끼셨던 불편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한 줄짜리 사과문을 게재했다. 구찌의 이러한 태도는 패션쇼 허가를 받았던 지난 2월 ‘경복궁이란 공간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겠다’라는 적극적인 말과 괴리가 있다. 정말 우리 문화재를 존중하려는 의도로 경복궁을 택했다면 우리 시민들에게도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누구도 피해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행사가 개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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