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학생기자. 어마무시한 직함이 필자에게 주어졌다. 이 직책을 이름 뒤에 얹고 달라진 점이 꽤 많다.

가장 큰 변화는 ‘의문을 의심하지 않는 힘’이 길러졌단 것이다. 일상에서 필자는 질문이 많다. 대개 그런 질문들은 다른 이에게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건 왜 그럴까. 어떻게 생겨난 걸까. 따위의 물음에 사람들은 관심이 많지 않다. 이런 경우 필자는 질문을 혼자서 먹어 삼킨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책을 등에 업은 필자는 그런 질문이 당연한 사람이 된다. 무겁고도 즐거운 일이다. 해야 할 질문을 못 했을 땐 본분을 의심하며 질책하기도 한다. 기자에게 '쓸데없는' 질문은 없다. 그렇기에 필자는 더 단단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질문한다. 질문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소한 질문으로 유의미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필자는 학생과 기자,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기자는 취재할 때 종종 ‘을’이 된다. 이야기를 요구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자가 갖춰야 할 예의를 지키며 취재원을 만난다. 동시에 학생으로 해야 할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일을 병행하지 못했을 땐 그 무엇도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자괴감이 들곤 한다. 학생도 기자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단순하다. 내일의 초고 제출이나 다음 주의 쪽지 시험과 같이, 앞에 놓인 일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된다. 

오늘도 명함을 들여본다. 필자는 우스갯소리로 ‘명함 받으려고 본지에 들어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명함 하나에 담긴 의미가 생각보다 깊고 잉크 한 방울에 쥐어지는 책임감은 늘 무겁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늘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고생 끝에 얻은 결과가 값지단 말이 있듯 필자는 매주 가치 있는 신문 한 부를 얻는다. 오늘도 필자는 힘들게 얻은 결과물에서 힘을 얻어 다시 또 펜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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