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영원히 잊히지 않을 듯한 순간이 있는가. 기껏해야 24년 살아봤다지만, 누군가 필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무래도 본지에서 보낸 2년이라 말할 것 같다.

본지 기자로 활동하며 ‘왜 학보사를 하냐’는 말을 꽤 들었다. 고생할 게 뻔해 보이는데, 왜 사서 고생하냐는 걱정 어린 시선이다. 밤샘 마감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듣곤 고개를 젓는 이도 있었다. 학보사 활동이 힘들다는 걸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만큼 값진 순간들이 많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누군가 왜 하냔 질문을 할 때 매번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곤 했다. 수료를 한 달 앞둔 지금 비로소 이 물음에 명쾌하게 답할 때가 된 것 같다.

첫째는 성취감이다. 신문은 매주 발간된다.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고 의미 있는 기사를 쓰려면 일주일을 정신 없이 보내야 한다. 고쳐 쓰고, 고쳐 쓰고, 또다시 고쳐 쓰면 비로소 기사가 완성된다. 고생해서 쓴 기사가 지면에 실리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몰려온다. 때론 고통스럽지만, 땀 흘려 고생했기에 느낄 수 있는 값진 순간이다.

둘째는 협업의 즐거움이다. 하나의 기사엔 적어도 다섯 명의 사람이 관여한다. 취재, 기사 작성, 기사를 돋보일 그래픽 제작, 퇴고, 지면 편집까지 끝내면 드디어 완성이다. 여러 사람의 손때를 거쳐 완성되기에 밤을 꼴딱 새우는 건 기본이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는 동료들과 함께하며 깊어지는 전우애는 덤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일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본지에서 활동하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시간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러니 본지에서의 활동을 정의하는 방식도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본지에서의 시간은, 앞으로의 필자를 이끌 귀중한 가치관을 정립했던 나날이었다. 

본지에서 마주했던 기쁨과 시련의 시간은 망각이란 호수에 서서히 가라앉으며 잊힐지 모른다. 그러나 고난의 순간, 어김없이 등장해 또다시 필자를 일으키는 기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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