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고등학생 때 작가가 되고 싶어 국문과에 가겠단 필자에게 선생님은 취업이 잘 된다는 다른 학과를 추천해주셨다. 작가란 꿈을 위해 국문과에 가는 선택은 돈을 벌기 힘들고 취업도 잘 안된단 이유였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도 국문과에 왔다.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직업에 예술 계통의 직업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등 예술 영역에서도 창작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때부터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란 의문을 품게 됐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에 내 직업은 대체될 것인가?’란 주제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한 논의를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최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엇이든 답해주는 ‘챗 지피티(Chat GPT, 이하 챗지피티)’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챗지피티는 전문직의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설까지 쓰기 시작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결국 하나였다. ‘창조적 생산성’을 가진 사람은 대체되지 않는단 것이다. 인공지능엔 창조적 생산성이 없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그것에 의미를 담아 섬세하게 조합하고 활용하진 못한다. 한 세무사가 업무에 챗지피티를 활용한 뒤 남긴 후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챗지피티가 전문지식에 대한 답을 주긴 했지만,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문제까진 해결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예술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소설이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장을 제공하기만 했을 뿐 이를 맥락에 따라 나열하고 배치한 건 사람이라고 밝혀진 바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사람이 쓴 작품을 보고 읽는다. 전문인에게 상담받으며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험에 따른 특유한 시선이 중요하단 이유에서다. 인공지능 뒤엔 누구의 것도 아닌 총체적인 데이터가 있지만, 한 사람의 뒤엔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한 경험과 서사가 있다. 하나뿐인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과 정보를 재배치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곧 인간만이 가진 ‘창조적 생산성’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의 우린 어떤 분야에서든 인간적인 경험과 서사를 활용하는 생산자가 돼야 한다.

필자는 창조적 생산성을 갖자는 확신을 두고 본교 한국어문학부에 다니고 있다. 여전히 작가라는 꿈도 꾸고 있다. 취업이 어려울 거라며 국문과 진학을 반대했던 선생님의 말이 힘이 없음을 다시금 느낀다. 학과, 일, 분야는 생각만큼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자세다. 데이터를 단순히 정리하고 통계를 내거나 이차적으로 유통하는 인공지능처럼 자신의 특유한 시선 없이 일한다면, 인공지능은 고사하고 사람에게도 먼저 대체될 것이다. 반면 경험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활용할 줄 아는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생산자는 어떤가? 그들은 이전에 없던 작품과 프로그램, 전략,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나가며 인공지능에게서조차 대체되지 못할 선구적 능력을 갖춰왔다. 우린 앞으로도 이 경험적인 창조성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임규리 한국어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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