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지난 20일(월) 발행된 제1424호 기획면을 마지막으로 본지에서의 부서 기사 작성을 마무리했다. 학우 세 명과 저출생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누는 대담, 뒷받침할 수 있는 해설 기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2021년에 같이 입사한 동료 기자이자 현재 편집장으로 일하는 친구와 함께였기에 어려움 없이 발행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2년이란 시간을 지나오며 서로의 눈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동갑내기 친구, 입사 동기를 넘어선 전우애가 느껴졌다.

여덟 면짜리 신문에 무려 두 쪽이나 이름을 남길 수 있어 기뻤다. 모두가 함께 만드는 신문에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한단 건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 아무에게나 주어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많은 학우들이 해당 기사를 읽어주길 바랐다. 기사의 구성부터 내용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더 노력했고, 완벽하진 않으나 필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숙대신보는 트램펄린과 같다. 필자가 좋아하는 허연의 시 '트램펄린'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트램펄린은 그냥 / 나를 떨어뜨리고 /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날 떨어뜨리고 /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본지에서의 생활은 전쟁이다. 트램펄린 위에서처럼, 할 일의 강도와 감정이 널을 뛴다. 하나를 끝내고 나면 다음 트램펄린이 이것도 뛰어보라며 무섭게 달려온다. 그러나 힘들게 다리를 움직인 만큼의 보상도 반드시 찾아온다. 높은 곳에서 마주한 풍경과 해냈단 뿌듯함은 비할 데가 없다. 그토록 선명한 성취감이 있었기에 최선을 다해 떨어지면서도 다시 트램펄린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제 필자는 바이라인에 이름을 남길 일이 없다. 신문을 쓰겠다고 애를 써서 뛰어오를 일도, 처참하게 떨어질 일도 없다. 취재 계획서부터 수없이 많은 요청서와 질문지를 마주할 일도 없다. 후련할 것 같았지만 아쉽다. 숙대신보란 트램펄린에서 날아올랐던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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