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필자는 글을 쓸 때 행복했다. 글을 쓰고 싶단 꿈을 놓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완성도 높은 글을 아무렇지 않게 써 내려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성장을 위해 달리던 와중 본교 캠퍼스 가판대에 놓인 ‘숙대신보’ 신문을 보게 됐다. 본지 기사는 당연하게도 하나같이 완성도 높은 글뿐이었다. 바이라인에 써진 기자단의 이름을 보며 이들과 함께 글을 쓴다면 필자의 작문 실력이 억지로라도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 해내겠단 의지보단 앞으로 있을 필자의 성장에 막연한 기대를 품고 본지 기자단에 발을 내디뎠다.

본지에서 활동한 지 약 4개월 동안 필자는 의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기사는 당연하게 작성되지 않는다. 완벽한 글 하나를 위해 수백 번 다른 기자 및 인터뷰이와 소통한다. 수백 번의 타자 소리를 낸다. 키보드 위로 떨어지는 필자의 땀방울이 신문에 묻어나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검토 과정을 거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기도 한다. 부자연스러운 하나의 문장이 발견된다면 대체 문장을 찾기 위해 기자 두세 명이 머리를 맞대 고민한다. 단어의 위치를 바꾸거나 문장을 두 개로 나눠보는 등 수십 번의 퇴고를 거쳐 완벽한 문장을 찾아낸다. 그렇게 고민해낸 문장 수십 개가 기사 하나를 구성한다. 키보드를 닳도록 눌러 완성한 기사가 지면을 채운다. 그렇게 지면이 8개가 완성되면 ‘숙대신보’의 새로운 호수가 발행되는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를 검토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즐긴다. 본지에 지원하던 당시의 포부는 사라지고 업무에 지쳐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요즘을 반성한다. 기자에겐 맡은 기사에 대한 책임감과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 기울일 신중함이 필요하다. 취재할 때 발휘할 세심함까지 더해진다면 진정한 기사를 완성할 수 있다. 무기력에 잠식되면 안 된다. 기자로서 책임감, 신중함, 세심함과 세 요소를 아우르는 의지를 끄집어내야 할 때다. 필자는 의지를 끄집어낼 도구로 글을 쓸 때의 행복을 사용할 예정이다. 과거엔 막연한 기대와 인정 욕구를 기반으로 행복을 완성했다. 글을 써 내려갈 때 행복하단 사실은 변치 않았다. 다만 꾸준한 노력과 버티는 힘을 눌러 담은 행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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