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숙케치]

2022년 7월, 새벽 5시. 몸만 한 캐리어를 두 개나 끌고 인천공항행 택시를 잡았다. 어스름한 하늘, 아무도 없는 거리, 기사님이 틀어두신 락. 어딜 가냐는 물음에 짧게 런던이라고 대답했다.

4년을 내리 학교에 다녔다. 초중고까지 합치면 자그마치 16년이다. 휴학계를 내고는 쭉 회사에 다녔다. 분명 힘든데,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쉬었다간 낙오될 것 같았다. 어디로 갈진 모르겠지만 남들처럼 움직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진짜 원하는 게 뭐였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니 캐리어는 무거웠고, 혼자란 생각은 부담됐다. 그래도 차근히 수속을 밟았다. 긴장이 풀려 비행기를 타고 채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위치를 확인하니 중국 베이징쯤. 살포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 빼곡한 삶이 내려다보였다. 참 보잘것없게. 그런데 그 안에 수천, 수억 개의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껏 그렇게 생각했다. 스물엔 좋은 대학에 가고, 스물셋엔 졸업하고, 늦어도 스물다섯엔 대기업에 취업하고, 서른엔 결혼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런데 하늘에서 바라본  세상은 참 어지럽게도 작았다. 그 안에 다양한 삶이 있을 테지.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내는데, 숫자와 성취에 지나치게 매여온 건 아닐까.

이어진 여행에서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처음 가는 길을 혼자 걸어도 보고, 사람들과 스몰톡(Small talk)도 나눠보고, 낯선 마트에서 장을 보고, 40킬로그램도 채 나가지 않는 몸으로 26인치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할 일 없는 날엔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삶이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인지 경험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니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바로 복학했다. 4년간 다니던 학교였지만 다시 오니 무척 새로웠다. 이젠 뭘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일까. 남들이 좋아한다고 무작정 따라 해보던 걸 멈췄다. 여행에서 발견한 나다움을 가꾸고,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공부했다. 여전히 필자는 ‘나’를 찾고 있다. 런던에서 찾아낸 내가, 서울에선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을까!

의류 18 조예은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