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한때 나였고, 나는 곧 당신이 걷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그 속에서 익숙한 구식 것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신식의 것이 대신한다. 대표적인 예로 키오스크(Kiosk)란 무인 단말기가 있다. 인건비 상승으로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지 않게 됐다. 그 자리를 24시간 가동 가능한 신식 무인 단말기가 대신했다. 필자는 종종 무인 단말기 앞에 한참을 서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 새로운 기술은 어떤 이에게 편리함을, 어떤 이에겐 비용 절감의 효과를 준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필자는 가끔 전시회, 식당, 카페 입구에 노키즈존(No Kids Zone)이라고 명시한 팻말을 본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제어가 안 돼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단 이유다. 부주의함으로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준 아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한데 묶어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우린 모두 한때 아이였다. 부모님의 말을 안 듣고 뛰어다니다 넘어지거나 부딪쳤던 경험이 있다. 그럴 때마다 혼이 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젠 의자에 앉아 쓴 커피를 홀짝거리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었다.

‘MSGR 한 잔 주세요.’ 미숫가루를 MSGR로 표기한 카페 메뉴판이 화제였다. 카페나 식당에서 영어로 표기된 메뉴판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돼 버린 요즘이다.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혹은 간단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세련돼 보여서’라면 다르다. 필자는 경기도에 한 아울렛을 갔다가 그곳에서 발견한 허세에 놀라고 말았다. 반려동물 배변 봉투함 ‘DOG WASTE STATION’ 이름 아래 Please clean up after your dog라고 적혀있었다. 다행히 필자는 21세기에 태어나 초등학생 때부터 정규 교육 과정으로 영어를 접했고 현재까지 공부하고 있다. 영어가 도배된 이 사회에서 가까스로 소외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소외당할지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사회를 장악한다면 필자는 소외당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사례 외에도 사회에선 다양한 소외가 발생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현재의 내 가족과 이웃이 느끼게 될 소외감이다. 그리고 미래의 내가 겪게 될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게 삭막한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 느낄 불편함과 소외감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다. 작년에는 시민들의 반대로 인쇄식 열차 시간표 철거가 무산됐다. 모바일 검색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불편을 심화시킨단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키즈존에 대항해 ‘예스키즈존’ 팻말을 내거는 가게들이 생겼고, 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Sold-out이라는 말은 품절로, Tea라는 말은 차(Tea)로 표기를 변경했다. 참으로 반갑고 따뜻한 변화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고 생각한다.’ 정여민의 ‘마음 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필자는 한 사회가 어느 정도 선진화 돼있는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사람을 대하는 온도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따뜻함을 나눴으면 좋겠다.

영어영문 20 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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