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언제나 폭발적인 인구로 붐비는 도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서울에 모여들어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본지 기자단은 다양한 이들의 터전이 된 서울의 변천을 알아보고자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4일(금)부터 오는 4월 2일(일)까지 개최되는 ‘서울살이와 집’ 전시에선 서울 사람들이 지내온 여러 주택의 모습과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 생활에 희망을 품은 이들이 일궈온 서울, 그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봤다. 


주택으로 재건된 서울

▲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자금 조달 홍보지다.
▲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자금 조달 홍보지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시는 어딜 가나 공사 중이었다. 지붕 모양으로 꾸며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다사다난했던 서울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벽면에 새겨진 연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연표는 서울 개발 역사와 생활상 변화를 당시 사용되던 지도와 책자로 보여준다. 1950년대엔 지방 인구가 서울로 집중됐다. 해방과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복잡한 서울에 자리 잡았다. 이에 서울시는 증가한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주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전후 이재민을 수용하기 위해 공급된 공공주택은 해외 원조를 받아 지어졌다. 연표 옆 ‘미국 민간인 한국 구호’란 문구가 적힌 홍보 전단은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노력을 보여준다.
 

▲1980년대 서울시에 지정된 아파트지구를 나타낸 지도다.
▲1980년대 서울시에 지정된 아파트지구를 나타낸 지도다.

1960년대부턴 주택 공급이 활성화됐다.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공영주택 사업이 정부 주도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무주택자에겐 공공 자금으로 건설된 ‘국민주택’이 공급됐다. 주택을 지을 때 쓰는 재료도 흙벽돌에서 단단한 *중공블록과 시멘트 벽돌로 발전했다. 이후 민간은행은 ‘민영주택’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가 되자 서울시는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될 일부 동네는 아파트지구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시장 벽면 ‘서울시 아파트지구 현황도’는 서울시를 가로지르는 아파트지구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은 활발히 개발되던 도시를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다가구 주택 활성화로 새로운 주거 형태가 등장했다. 다가구 주택은 하나의 집에 여러 가족이 세를 주고 사는 거주 형태다. 1980년대 유행한 2층 규모 단독주택 ‘슬라브 주택’도 다가구 주택이다. 전시장 한 켠엔 관악구 신림동의 슬라브 주택 구조도가 그려져 있었다. 구조도에 적힌 세 가족의 이야기는 다가구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지금 2층은 세 든 부부가 살아요’ ‘나중에 남편 서재로 쓰려고 생각해둔 방인데 지금은 어떤 자매가 세 들어 살아요’ 등 설명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거주 형태가 일반 주택에서 다가구 주택으로 확대되며 거주지 선택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그 이면엔 부작용도 존재했다. 반지하층도 ‘셋방’으로 거래되기 시작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시민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달라진 집, 개선된 생활상
급속도로 증가한 인구 탓에 1920년 서울은 주택난에 시달렸다. 이후 해방과 전쟁으로 삶의 질이 저하되자 서울 시민들은 생활 환경이 개선되길 원했다. 전시 2부 ‘서울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의 주제 중 하나는 지식인 중심으로 일어났던 생활문화 개선 운동이었다. 운동 당시 쓰인 도서 「재래식 주거개선에 대하야」는 전체 집 구조와 온돌, 부엌, 현관 등의 이상적인 개량 안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열악한 전통 가옥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막대한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1950년대까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취사와 난방이 분리된 1970년대 후반의 입식 주방이다.
▲취사와 난방이 분리된 1970년대 후반의 입식 주방이다.

1960년대부터 주택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집 안 수도와 난방 시설도 변화했다. 달라진 장소 중 가장 대표적인 건 부엌이다. 1960년대 초 부엌은 시멘트로 마감돼 과거보다 개량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턴 상하수도와 도시가스가 공급돼 입식 주방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취사와 난방이 분리됐고 부엌엔 타일이 깔려 깔끔해졌다.
 

▲1954년에 지어진 재건주택의 안방을 재현한 모습이다.
▲1954년에 지어진 재건주택의 안방을 재현한 모습이다.

전시장에 마련된 과거 거주 공간에선 서울 시민의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전시장은 당시 성북구 안암동 재건주택의 안방을 재현했다. 이는 1954년 실제 모습을 토대로 제작한 것이다. 당시 안방은 협소한 규모 탓에 그 용도가 구별되지 않았다. 해당 공간에선 식사, 집안일, 취침 등 가족 구성원의 모든 생활이 이뤄졌다. 옆으로 이동하자 1975년에 준공된 아파트도 실제 크기와 똑같이 구현돼 있었다. 13평형인 송파구 잠실동 잠실시영아파트를 그대로 구성한 내부엔 실제 거주민 사진과 일화가 적혀있어 더욱 생동감이 느껴졌다.

현대인, 집에 가치를 더하다
전시 말미엔 ‘서울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을 주제로 현대인에게 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아파트 전시 공간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벽면엔 관람객이 손 글씨로 적은 설문지가 빼곡했다. 설문지엔 자신이 살아온 집을 회상하는 관람객들의 글이 적혀 있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관람객에게 묻는 조사에선 52%(41명)에 달하는 응답자가 단독주택을 선호했다. 관람객은 층간소음이나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공간에 살고 싶다고 답했다.

타이포그래픽(Typographic)으로 정리된 시대별 아파트 광고 키워드에선 집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드러났다. 1960년대 광고 키워드 중에선 ‘건설 규모’와 ‘주택 가격’이 돋보였다. 1990년대 말 이후엔 ‘고품격’과 ‘최고의’란 단어가 가장 눈에 띄었다. 이재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급했던 1960년대엔 거주지 자체로서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반면 1990년대 말 이후 경제 성장이 이어지자 고품격 시설을 지닌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해 본래 집의 의미에 상품 가치가 더해졌다.


서울 시민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복잡한 도시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편안한 곳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시민들의 보금자리인 주택이 발전해온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에게 집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전시 마지막엔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16년을 모아야 한다는 통계 결과가 제시돼있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진 모든 서울 시민이 자신만의 집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중공블록: 속에 구멍이 뚫린 시멘트 블록이다.

참고문헌
전봉희, 주서령, 오정은, 도연정, 박일향. (2021). 2021서울생활사조사연구 보고서 <서울시민의 주생활>. 서울생활사박물관.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