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수) 신한은행 숙명여자대학교지점(이하 숙명여대지점)에서 최자영(독일언어문화 95졸) 동문을 만났다. 최 동문은 본교와 신한은행의 상징색인 푸른색 옷을 입고 본지 기자단에게 인사를 건넸다. 환하게 웃으며 기자단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숙명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 동문은 신한은행 최초 여성 해외주재원, 신한금융지주 첫 여성 부서장을 거쳐 지난해 1월 숙명여대지점장에 임명됐다. 해당 지점이 과거 조흥은행 청파동지점이었을 때 인턴으로 입사한 뒤 꼭 27년 만이다. 후배들에게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되고자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다는 최 동문. 대학생 인턴이 한 지점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까지. 그 비결은 ‘꾸준함’이었다.


■ 글로벌 따라 은행으로 간 독어독문학도
최자영(독일언어문화 95졸) 동문은 어린 시절부터 언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언어가 국제사회 정세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 세계 흐름을 접할 수 있는 길은 언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금융업계에서 국제 재화 흐름에 대해 배우게 됐다.

1995년 본교 독일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하셨어요. 독일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독일 관련 전공이 취업에 유리하겠다고 생각해 독일언어·문화학과를 선택했어요. 제가 입학하던 1990년대는 독일이 통일을 이뤄 유럽의 강대국으로 도약하던 시기였어요. 고등학생 때 일본어를 배운 경험을 살려 일본 관련 학과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당시 본교엔 일본학과가 없었죠.

처음 배우는 독일어가 어렵진 않으셨나요?
독일어 공부를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입학했어요.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꾸준히 노력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죠. 2학년 때 신혜양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님의 수업에서 C를 받은 적이 있어요. 전공에서 최하점을 받으니 기필코 A를 받아야겠단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그 성적을 만회하려고 수업을 두 번이나 더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결과 3학년 때 B, 4학년 때 A로 마무리할 수 있었죠.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직하셨어요. 금융권에 진출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해외를 상대로 새로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당시 사회적으로 ‘세계화’가 화두였거든요. 전공을 살려 무역이나 통역 분야로 진출하고 싶었죠. 그러다 4학년 때 우연히 은행 인턴 모집 공고를 봤어요. 은행에서 국제 정세 흐름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바로 지원했죠. 그렇게 여름방학 동안 조흥은행 청파동지점에서 인턴 근무를 했어요. 외국 경제 전문지 번역업무를 하며 새로 접한 경제 관련 정보에 놀랐던 기억이 나요.

■ ‘최초’ 타이틀에 숨겨진 뒷이야기
인턴을 거쳐 정식 채용된 최 동문의 목표는 해외 주재원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이었던 금융권은 여성에게 해외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 동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그의 진심에 기회가 찾아왔다. 쉼 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끈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입사 이후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그동안 외환업무부, 자금결제부, 대기업 점포, 마케팅부 등에서 일했어요. 학부 시절 배운 언어를 기반으로 외국기업과 소통하며 거래를 진행했어요. 대기업에 입점해 있는 은행에서 근무하며 기업 간 거래를 맡기도 했죠. 마케팅 부서에서 현재 숙명인이 사용하고 있는 ‘헤이영 스마트 캠퍼스’ 앱 기획과 도입 전반 또한 담당했어요.

업무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여성이란 이유로 원하는 부서에 배정받지 못한 적이 많았어요. 시차가 있는 국가들과 연락이 잦은 국제부나 업무강도가 높은 대출 분야 업무에 지원했을 때 번번이 좌절됐죠. 여성은 퇴근 후에 가사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야근이 많고 힘든 일은 여성에게 잘 배정되지 않았죠.
 

▲ 최 동문이 신한금융지주 최초 여성부서장 시절 찍은 사진이다. 최 동문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제공=최자영 동문)
▲ 최 동문이 신한금융지주 최초 여성부서장 시절 찍은 사진이다. 최 동문은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제공=최자영 동문)

2008년 신한은행 최초 여성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셨어요. 2018년엔 신한금융지주 최초 여성부서장에 발탁되셨죠. 어려움 속에서도 해당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배정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집요하게 원하는 업무에 지원했어요. 당시 지점장님께서 저를 불러 지원서를 수정하라고 할 정도였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겁 없다’란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배정받지 못해 낙담할 때도 많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계속 도전하다 보니 제게도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에 파견돼 환전소 자금관리와 일본 국제공항 공사 거래를 담당했어요. 직접 발로 뛰며 거래처를 찾아다니고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죠.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원했던 일이라서 즐거웠어요.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사직서 제출이 반려됐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1997년 IMF의 영향으로 많은 동료가 퇴사했어요. 이 시기에 저도 다른 일을 해볼까 해서 사직서를 냈죠. 그러자 당시 지점장님께서 제 사직서를 파기하셨어요. 그리곤 제게 “최 대리, 넌 은행이 딱 이야”라면서 북돋아 주셨죠. 평소 제 끈기와 욕심을 좋게 평가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몰랐지만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최 동문이 지난해 ‘신한쉬어로즈 컨퍼런스’에 참여한 모습이다. 최 동문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최자영 동문)
▲최 동문이 지난해 ‘신한쉬어로즈 컨퍼런스’에 참여한 모습이다. 최 동문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최자영 동문)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있는지 궁금해요.
훗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되고자 지금까지 달려왔어요. 입사했을 때만 해도 금융권엔 여대 출신이 별로 없었어요. 선배들이 없다 보니 항상 문제를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해서 힘들었죠.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을 때마다 ‘난 나중에 후배들이 기댈 수 있는 선배가 돼야겠다’라고 다짐했어요.

■ 고민이 있다면 사랑방 은행으로 오세요
최 동문은 본교와 은행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문 초청 행사인 청파한울제에 본교은행지점장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선임 기간 그의 목표는 지점을 ‘숙명인 공감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교 지점에서 근무하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모교 지점이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에 지점장으로 오게 돼 상당히 뜻깊어요. 숙명여대지점은 대학교에 위치한 기관 점포라서 특히 지점장의 역량이 중요해요. 대학과 관계를 유지하고 협약을 체결하는 등 주요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점장으로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점 운영 시 가장 중시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편안한 은행을 추구해요. 지점장의 역할은 은행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직원들 사이에 실적을 올리겠단 긴장감이 맴돌면 고객들도 불편함을 느끼죠. 그래서 직원들이 경쟁하기보단 서로 협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임 기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장차 저희 지점이 후배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에서 숙명인들과 많이 만나고 싶어요. 현재 저희 지점에는 독일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한 선배가 한 명 더 근무하고 있어요. 두 선배가 항상 이곳에 있으니 고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편하게 방문해줬으면 해요.

청년들에게 금융 전문가로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려요.
투자 경험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금융시장을 보는 능력을 길렀으면 해요.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작은 돈이라도 직접 재테크를 해보길 바라요. 그 경험은 장차 사회에 진출해 경제활동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적은 돈이라도 좋으니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와주면 좋겠어요.

본교를 졸업한 인생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되새기고 노력하다 보면 한계는 사라질 수 있어요. ‘마음을 굳건히 하고 담대히 하라’는 말처럼 자신의 선택을 믿고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기다림의 시간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모든 노력은 어느새 성공이란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거예요.


최 동문은 은행 입사 후 삶을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에 비유했다. 그는 “느린 버스라도 계속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 앞에 오잖아요”라며 “언젠가 노력이 인정받을 날을 기다리며 ‘조금만 더 해보자’란 마음으로 버텼어요”라고 미소 지었다.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희미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최 동문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목표를 되새기며 때론 기다리고, 때론 전진해보자. 언젠가 우리도 나만의 버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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