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채널 ‘노는 언니’, SBS ‘골 때리는 그녀들’, JTBC '언니들이 뛴다-마녀 체력 농구부' 등 여성 스포츠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여성 스포츠 예능의 등장은 스포츠가 남성의 전유물이란 인식을 깼다. 김지영(교육 22) 학우는 “여성 예능에서 출연자가 서로 응원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 감독, 게스트, 코치와 같이 ‘전문성’을 지닌 역할을 모두 남성이 맡아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여성 예능이 깨뜨린 기존 예능 속 관념은 무엇일까. 여성이 예능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점검해봤다.
 

▲쿠팡플레이 웹 예능 ‘SNL 코리아’에서 사진 좌측에 서 있는 인턴기자가 인터뷰 중 울먹이고 있다. (사진 출처=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웹 예능 ‘SNL 코리아’에서 사진 좌측에 서 있는 인턴기자가 인터뷰 중 울먹이고 있다. (사진 출처=쿠팡플레이)

불편한 개그, 웃어도 괜찮을까?
코미디 예능은 주로 여성의 외모와 행동을 왜곡해 유머 소재로 사용한다. 지난 1999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된 KBS 예능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 코너 '봉숭아 학당'에선 ‘누가 봐도 못생긴 여자 성형해서 예뻐지면 개성 없다’는 출연자 발언이 송출됐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는 쿠팡플레이 웹 예능 ‘SNL 코리아’ 또한 여성 비하 논란에 섰다. 해당 프로그램 속 캐릭터인 ‘인턴 기자’는 20대 여성 사회초년생을 풍자한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돌아오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울먹거리며 불편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친다. 인턴 기자에 대해 온라인에선 '과거 내 모습 같아 공감돼 재미있다'란 의견과 ‘특정 성별의 미숙함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단 의견이 대립하며 논란이 일었다. 한민서(지능형전자시스템공학 23) 학우는 “모든 사회초년생이 그 캐릭터 같진 않다"며 "모든 여성을 인턴 기자 캐릭터와 동일시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소영(전통식생활 석사 과정) 학우는 "과거 기억이 떠올라 인턴 기자에 공감했다"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다른 의견을 말했다.
 

▲ KBS2 예능 ‘살림하는 남자 시즌2’에서 ‘이제 끝났으면 밥 차려’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KBS2)
▲ KBS2 예능 ‘살림하는 남자 시즌2’에서 ‘이제 끝났으면 밥 차려’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다. (사진 출처= KBS2)

가족 예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제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1998년 방영된 SBS 농촌 예능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에선 한 할아버지가 아들을 낳지 못해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생활한단 내용이 방영됐다. 해당 장면은 한국 사회 남아선호사상을 반영한다. 프로그램의 핵심 코너인 ‘장수 퀴즈’에선 ‘가정불화가 일어날 때는 무엇이 먼저 가냐’는 질문에 한 남성 출연자가 ‘매가 먼저지’라고 답하며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표현했다. 2019년 KBS2 ‘살림하는 남자 시즌2’도 마찬가지다. 한 남성 출연자가 아내를 향해 ‘밥이나 차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그대로 실렸다. 해당 장면은 여성에게만 가사 노동을 전가하는 사회 현실을 보여준다. 이소현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는 “여성이 육아나 가사를 전담하는 가부장적 관념이 예능에서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찰, 토크쇼 등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 형식의 예능은 여성에게 수동적 역할을 요구한다. 인기리에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KBS2 ‘1박 2일’ ▶SBS ‘집사부일체’ ▶tvN ‘문제적 남자’ ▶JTBC ‘비정상회담’ ▶JTBC ‘아는 형님’ 등에선 해당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위 프로그램에서 남성은 고정 출연자로, 여성은 단발성 출연자로 등장한다. JTBC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하는 여성 게스트들은 ‘꽃’ ‘여신’ ‘인형’과 같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기쁨 서울YWCA연합회 여성운동팀 직원은 “여성 출연자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보단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현재 흥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선 남성 출연자 수가 여성 출연자보다 훨씬 많다. 지난해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시행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조사에서 10위 안에 든 예능은 ▶MBC ‘놀면 뭐하니?’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SBS ‘런닝맨’ ▶KBS2 ‘1박2일’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자 비율은 모두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대중성으로 분석한다. 현재 예능에서 활약하는 소수 남성 출연자는 과거부터 꾸준히 활약해 영향력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제작사들은 이미 인지도가 있는 남성 출연자를 채용하는 것이 더 안전한 전략이라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방현영 E채널 프로듀서 또한 “오래전부터 대중의 신망을 받으며 입지를 굳힌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여성이 자리를 늘리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예능 속 차별 
여성의 외모를 미화하거나 비하하는 예능은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  외모를 평가하는 콘텐츠가 많아지면, 여성은 미디어 속 획일화된 미적 기준에 맞춰 자신의 외모를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외모 다양성을 저해하고 외모관리 규범을 강화해 개인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문제를 낳는다. 성평등 미디어 운동을 진행하는 이 직원은 “코미디 예능에선 여성의 외모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폄하해 놀림거리로 소비한다"고 지적했다. 신현정(교육 22) 학우는 "예능에서 여성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며 "여자는 망가지면 안 된단 사회적 관념이 예능에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예능은 시청자의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 예능이 남성에게 경제 활동을, 여성에 가사 노동과 육아를 요구하는 전통적 성 역할을 재생산한다면 시청자는 이를 무의식중에 받아들인다. 이 교수는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성차별은 방송에서 제시된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방영 중인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는 ‘남자는 여자 없으면 안 돼, 애야, 아무것도 못 해. 아무리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부인 없으면 안 돼’란 남성 출연자의 가부장적 발언을 문제의식 없이 내보냈다. 신 학우는 “해당 출연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성차별적 발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시행되는 미디어 속 성차별 해결 방안엔 한계가 있다. 지난 2014년 개정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 1항엔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해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9년 ‘양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이하 안내서)’를 공개했다. 해당 안내서엔 방송 프로그램은 ‘주제 선정에서부터 양성평등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 있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고 양성의 다양한 삶을 보여줘야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해당 안내서는 의무 사항에 그쳐 이를 준수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제재할 수 없다. 그 결과 현재까지 미디어 콘텐츠의 성차별적 내용 송출, 출연자 성비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서울YWCA '2022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예능/오락 프로그램 속 출연자의 성비는 여성 39.9% 남성 60.7%로 조사됐다. 정부 차원에서 미디어 내 성 고정관념 규제의 법제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방 프로듀서는 “법적 규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도 “다만 그 효과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고, 성 고정관념의 기준을 어떻게 전부 규정할 수 있을지의 현실적 문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국 예능 처방전
미디어는 다양한 여성의 이미지를 그려내야 한다. 2021년 JTBC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에선 한부모 가정이 등장했다. KBS 가족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엔 비혼모 가정이 출연했다. 해당 가족의 출연은 비혼모는 곧 비정상 가족이란 정형화된 인식을 깨뜨렸다. 이 교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존 여성의 재현 양상을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여성의 이미지들을 만들고 성 고정관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방 프로듀서 또한 “미디어에서 여러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 지난 2020년 한국방송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방송 예능 제작자 중 96.5%는 남성이었다. 그러나 최근 방송 업계에선 여성 프로듀서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돌싱글즈2’ ‘문명특급’의 연출자는 각각 박선혜, 이은재 프로듀서로 전부 여성이다. 또한 여성 출연자만 등장하는 JTBC 예능 ‘노는 언니’도 흥행에 성공했다. 노는 언니는 1년 만에 E채널 간판 예능 자리를 차지하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노는 언니를 연출한 방 프로듀서는 “최근 의사 결정자 자리에 여성 프로듀서도 늘어나고 있어 새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수용자의 올바른 성인식을 위해선 성인지 미디어 교육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성인지 미디어 교육은 수용자가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하고 젠더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2015년 교육부 개정 교육과정은 미디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당 교육과정에서 미디어 교육의 목표는 ‘콘텐츠를 이해하는 의사소통 능력’ ‘정보를 활용하는 지식 정보처리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엔 '성소수자'와 ‘성평등’이란 용어가 삭제됐다. 이 직원은 “미디어 속 성차별적 고정관념은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사회에 뿌리박혀 있었다”며 “교육을 통해 해당 시각을 뿌리 뽑고 수용자가 미디어를 성평등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여성이 사람 그 자체로 표현되는 시대를 '꿈'만 꾸고 있다. 미디어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한다. 예능 속 여성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곧 현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여성 예능의 흥행은 한국 예능계가 성평등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희망을 심어준다. 방현영 E채널 프로듀서는 “유튜브, OTT 등 새로운 문법의 콘텐츠가 각광받으면서 여성 출연자도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곧 브라운관에서 여성도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예능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참고문헌
배상률,이재연(2012). 문화계발효과이론을 한국사회에 적용한 연구
김예솔란(2018). 미디어 노출과 대인 커뮤니케이션이 20대 여성의 신체 만족도와 외모 관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규범의 역할을 중심으로
홍지아, 정사강(2020). 성인지 미디어교육의 현황과 가능성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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