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나긴 시간을 거쳐 이제 필자는 부장 기자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00% 만족하는 기사를 쓴 적이 없다. 그래서 매번 기사가 발간되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다. 주변인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피드백을 부탁하는 것이다. 취재 능력이 부족한 건지,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건지 원인을 찾기 위해 필자는 매번 고민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꽤 의외였다. 필자가 부족하다 느낀 기사를 누군가는 좋은 기사라 평했다. 어쩌면 필자는 매번 완벽한 기사만을 발굴해 내는 기계가 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만약 기계가 된다면 진정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완벽'만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보단 빈틈이 있지만 소신 있는 사람에게 왠지 모르게 더욱 정이 가듯 글도 마찬가지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인간적인 글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제시했다. 에토스는 성품을, 파토스는 감성을, 로고스는 논리를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선 빈틈없는 논리뿐만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감성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면 좋은 기사는 무엇일까. 글로서 누군가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기사가 아닐까. 서툴렀던 필자의 기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요즘은 인공지능이 기자를 대신해 기사를 작성한다. 주관이 포함되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인간 기자보단 인공지능 기자가 훨씬 능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쓴 기사는 진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미래에 감성 기능까지 장착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모르겠다. 로봇이 아닌 필자의 기사는 완벽하지 않다. 샅샅이 뜯어보면 분명 논리적인 오류투성이에 주관적인 문장도 가득할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노력하는 인간 기자다. 본지 기자로 활동하며 읽고 싶고 잔상이 오래 남는 기사를 쓰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기계는 이러한 필자의 노력을 모방하진 못할 것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결점 없는 기사를 매번 쓰진 못할지언정, 문제의식은 날카롭게 지적할 줄 아는 기사를 쓰고 싶다. 완벽하진 않지만 사람 냄새나는 기사를 말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