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변화는 누가 이끄는가. 총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학내 구성원이 주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주체가 있다. 바로 ‘정부’다. 지난 3월 24일(목) 공고된 본교 공과대학 학칙개정의 배경엔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이 있었다. 학칙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첨단학과 신설과 학과명 변경이었다. 그러나 해당 학칙 개정은 구성원 간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아 학우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본교 기획팀은 지난 4월 간담회를 열어 ‘첨단학과를 신설해 정부의 다양한 재정지원을 받고자 학칙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첨단학과를 신⋅증설한 건 본교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양대 데이터사이언스 학부, 경희대 인공지능학과 등 수도권 주요 대학들도 첨단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재정지원사업이란 대체 무엇이고, 대학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걸까.


경쟁하는 대학, 지원도 ‘아무나’ 못 받는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평가와 경쟁’을 통한 차등적인 대학 재정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교육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대학의 수가 늘어나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됐다. 이에 정부는 2010년대부터 사회의 요구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대학에 금전적 지원을 확대했다.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대학에만 지원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교 권경미 기획팀장은 “정부는 사립대학에 직접적인 지침을 내릴 수 없다”며 “대신 재정지원의 형태로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이하 재정지원)’의 대표적인 예론 본교가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참여한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 이하 프라임 사업)이 있다. 당시 본교는 3년간 약 450억원에 해당하는 지원을 받기 위해 공과대학을 개편했다(지난 숙대신보 제1359호 ‘변화를 위한 숙명의 도전, 프라임 3년을 돌아보다’ 기사 참고). 당시 본교는 사업을 수주해 30여 명의 공과대학 전임교원을 채용하고 본교 제2창학캠퍼스에 프라임관을 신축했다. 프라임 사업이 종료되자 본교는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주관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을 새롭게 수주했다. 해당 사업으로 프라임 사업 비교과 프로그램인 WINE(Women IN Engineering)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본교 송기창 교육학부 교수는 “교육부가 요구하는 사항을 이행해야만 추후에도 꾸준히 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대학에 혜택을 늘리고 있다. 교육부의 2023년도 예산안은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분야 인재양성에 집중돼 있다. 2023년도 첨단기술 관련 예산은 총 3152억원으로 작년보다 1815억원이 늘었다. 이에 가천대, 경희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18곳은 지난해부터 첨단학과를 신설했다. 본교 또한 지난 3월 학칙개정으로 IT공학전공이 인공지능공학부로, 소프트웨어융합전공이 데이터사이언스전공 등으로 변경됐다. 본교는 올해부터 첨단분야 인재양성을 조건으로 과기부 주관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 교육부 주관 산학연협력선도대학사업(LINC 3.0) 등 총 6개의 신규 사업에서 총 약 390억원을 지원받을 예정이다.


대학 돕겠다 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은 대학 운영에 있어 소금과 같은 존재다. 현재 대다수의 대학은 과거보다 재정상황이 악화했다. 송 교수는 “학령인구가 감소해 입학 인원이 감소하고 국가 차원에서 반값등록금을 추진했다”며 “대학 재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금이 줄어들며 재정적 어려움이 더욱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많은 대학이 정부의 지원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권 팀장은 “수도권에 속해 있는 본교는 타 권역 대비 훨씬 높은 수주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으로 대학의 재정난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지원받은 재정은 대학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경상운영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상운영비는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로 교직원 월급, 시설 관리비 등을 말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돈은 비교과 프로그램, 산학협력 인턴십 등의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 권 팀장은 “대학 운영 시 경상운영비 지출이 절대적으로 큰 상황이다”며 “신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재정을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대학 환경을 개선하는 교직원 채용, 시설 최신화 등엔 지출할 수 없다. 이는 대학 교육의 질적 하락을 야기한다. 송 교수는 “현재 대학들은 돈이 부족해 비정년 교수를 채용하고 노후화된 교육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며 “교육의 질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지원은 대학 간 양극화 문제를 심화하기도 한다. 지난 2019년 대학재정알리미의 지역별 고등교육 재정 배분 현황에 따르면 사업 지원비가 일부 대학에 편중돼 있었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사립대는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상위 5개 대학이 전체 지원액의 4분의 1인 25.6%(약 9476억원)를 차지했다. 국⋅공립대는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지원액의 65.4%(약 1조3966억원)를 가져갔다. 사업 지원비의 차이는 대학 인프라의 차이로 이어져 지방 거주 청년의 수도권 이동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간 지원금 차이가 누적될수록 더 많은 학생이 좋은 인프라를 갖춘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인 고등교육 지원정책은 악순환을 만든다”고 말했다.

재정지원은 기초학문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8월 30일(화) 발표된 2023년 교육부 예산안에 따르면 ▶반도체 특성화 대학 사업 ▶첨단분야 인재양성 부트캠프 ▶디지털 신기술 혁신공유대학 ▶부처 협업형 인재양성 사업 등 첨단분야 인재를 양성하는데 지난해보다 총 1215억원이 증액됐다. 기초학문에 대한 집중 지원은 계획되지 않았다. 임 연구원은 “정부가 취업률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중요시해 기초학문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반도체, 인공지능 등 공학 기반의 응용학문은 기초학문 없인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내실 있는 고등교육을 위해
재정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지원비 사용 가능 영역을 넓혀야 한다. 현재의 재정지원은 대학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경상운영비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원비를 대학 실정에 맞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 교수는 “재정지원을 사업비 외 다양한 용도로 지출할 수 있도록 유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지원되는 재정의 70%는 경상운영비에, 30%는 사업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양방향 지원이 필요하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재정지원 규모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재정지원 비율은 지난 2019년 기준 0.7%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1.1%에 한참 못 미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성과 및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재정지원사업에 편성된 비용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예산 확대가 필수적이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각 대학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재정지원 또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첨단산업 기반 재정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학은 재정을 지원받기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첨단산업 분야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천편일률적으로 4차산업혁명 인재를 양성하기보단 대학 고유의 차별성을 계발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본교는 지난 2016년 공학 교육을 지원하는 프라임 사업에 참여해 공대를 신설하고 공학 인재 양성에 집중했다. 송 교수는 “과거 본교는 인문사회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학교였다”며 “프라임 사업 시작으로 인문사회 분야의 재정이 일부 공대로 이전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 15일(화)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브리핑에서 오는 2023년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해 대학 일반재정지원의 규모를 지금보다 약 2배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정난을 겪는 대학을 구조하겠단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건 의지를 잘 실현하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이 있다. 고등교육 재정을 적재적소에 지원하는 것은 개별 대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의 인재양성과도 직결된다. 수준 높은 교육은 100년을 내다보는 정부의 청사진에 달려있다.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 인문, 예체능계의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 확대와 학내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사업임.


참고문헌
임은희. (2022).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고등교육 재정지원 개편 방안. 대학교육연구소. 
서영인. (2017). 고등교육 재정지원 정책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김선연, 김병주. (2020). 대학의 재정지원사업 선정에 따른 대학 성과 및 교육 여건 차이 분석.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문보은. (2021).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성과 및 과제 ‘대학혁신지원사업을 중심으로’. 한국교육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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