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각각 4.3%와 19%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었다. 왜 한국에선 이들의 수가 저조할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선거비용을 강조했다. 권수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이 지역구 기초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선 2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후보자가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하나 충분치 않다"고 설명했다. 김소희(독일어문 20) 학우는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에겐 200만원도 부담이다”고 말했다. 정치적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정치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청렴한 정치 문화를 위한 ‘정치자금법’
후보자는 정당의 공천을 받기부터 선거운동을 마치기까지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우선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당비를 내야 한다. 이후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3억원의 **기탁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납부해야 후보로 등록된다. 선거유세 과정에서도 선전벽보 및 선거홍보물 작성, 후보자 방송연설, 신문 및 방송 광고 등에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이처럼 정치인이나 정당이 정치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당비, 기탁금, ***선거비용 등을 정치자금이라 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과 외부에서 기부된 후원금도 정치자금에 포함된다.

정치자금법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965년 제정됐다. 해당 법은 정치인과 정당에게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과정을 공개할 것을 의무화해 자금과 관련된 부정부패를 방지한다. 정치자금법은 지난 2002년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차떼기 사건’으로 중요성이 부각됐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재벌기업에게서 수백억대의 불법 선거자금을 화물차량으로 전달받았다. 강신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떼기 사건 이후 불법적인 선거관행을 개혁해야 한단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으로 지난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소액다수의 기부에 의한 정치문화’가 떠올랐다. 다수의 국민이 정당에게 소액을 기부하는 해당 문화가 활성화되면 정치인과 정당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라 선거 한도액 산정, 실명제, 정치후원회 제도 등이 시행되고 있다. 후보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금액 내에서 선거비용을 사용해야 한다. 지출 가능한 선거비용의 한도가 설정되지 않으면 개인의 경제력이 선거 과정에 동원될 수 있다. 이는 선거운동의 과열을 야기하고 공정성을 훼손한다. 또한 기부금은 실명제로 운영돼야 하고 정당은 회계보고의 절차에 맞춰 자금액을 밝혀야 한다. 해당 제도에 따라 모인 정치자금은 정치후원회를 통해 정치인과 정당에게 전달된다. 이는 자금이 개인 간 직접적으로 오가는 것을 방지해 각종 비리를 단절한다. 강 교수는 “현행 정치자금법은 깨끗한 선거문화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며 “특히 후원회를 거쳐 선거 비용을 모금하는 방식이 일상화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정치자금제도, 똑같은 출발선 그어주길
선거보전금 제도로 인해 소수정당이 소외되고 있다. 정치자금제도의 하나인 선거보전금은 정부가 득표율에 따라 후보자에게 선거비용을 돌려주는 제도다. 당선자는 모든 선거비용을 정부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다. 낙선 시엔 15% 이상의 득표율을 달성해야 비용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 10%의 득표율을 넘기면 선거비용의 절반을 지급받는다. 권수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과 같은 정치적 소수자는 거대정당의 후보로 공천받지 않는 이상 10%의 득표율을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월 1일(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원 중 선거 비용을 보전받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곳뿐이었다.

정치적 소수자의 출마 비율에 따라 지급되는 추천보조금 또한 거대정당에 유리하게 적용된다. 추천보조금은 여성, 청년, 장애인의 출마 기회를 확대하겠단 취지로 운영되는 정치자금제도다. 전국 지역구에 출마한 전체 후보 중 정당이 여성 후보자를 10% 이상 배출하면 여성추천보조금을 지급받는다. 여성 후보자의 비율을 충족한 정당은 국회의석수와 득표수에 비례해 보조금을 배분받는다. 그 결과 똑같은 수의 소수자를 공천해도 거대정당이 더 많은 추천보조금을 확보한다.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중연합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동일하게 25명의 여성후보를 공천했다. 민중연합당은 약 91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은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약 5억원을 받았다.

정치적 소수자의 의회 진출을 돕기 위해선 선거보전금의 보전기준과 지원방식이 변화해야 한다. 선거보전금의 지급 기준을 현행 10%보다 낮춰 득표율이 낮은 여성, 청년, 장애인 후보자도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정치적 소수자들에겐 사전에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권 책임연구원은 "자비로 선거운동을 진행할 만큼 경제적 기반이 견고히 마련된 청년은 거의 없다"며 "사전에 선거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청년들이 후보로 뛰어드는데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천보조금은 적용대상을 늘리거나 할당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지원금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개정돼야 한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 지역구 시·도의회의원, 지역구자치구·시·군의회 의원 선거에선 추천보조금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및 광역단체장 선거엔 해당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전국 기초단체장 총 266명 중 여성은 8명으로 4% 미만이며 광역단체장은 남성뿐이다. 기초자치단체장 및 광역단체장 후보의 공천에도 추천보조금을 도입해 정치적 소수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 정당이 여성, 청년, 장애인 후보자를 정해진 기준만큼 할당하지 않으면 선거보조금을 줄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권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보조금 액수가 적어 정당이 정치적 소수자를 더 많이 공천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해당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기존의 지원금을 삭감하는 방식이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껏 소외됐던 여성, 청년, 장애인들이 정치에 나서기 위해선 정치자금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공직선거법 제16조에 따르면 당선인이 될 수 있는 권리인 피선거권은 성별, 사회적 신분, 재산 등에 의해 차별받아선 안 된다. 정치참여의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돼야 한다. 강신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사람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널리 퍼질 것이다”고 말했다. 누구나 선거비용 걱정 없이 국민의 대표자로 각계각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회가 오길 기대한다.

*당비: 정당의 당헌·당규 등에 의해 당원이 부담하는 금전, 유가증권, 기타 물건임.
**기탁금: 법률로 정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 등록 신청 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맡겨두는 비용임.
***선거비용: 후보자가 유세를 위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지출하는 금전과 물품임.

참고문헌
강신구(2019). 정치자금제도의 문제와 개선방안: 제19대 대선 선거비용 분석을 중심으로. 지역과 세계(구 사회과학연구). 43(1), 143-177.
권수현, 이진옥(2022). 여성청년의 정치참여 경험과 선거제도 개혁방안 모색. 이화젠더법학. 14(1), 229-266.
김민주.(2021.02.23). “한국의 청년 국회의원 비율 4.3%…OECD 국가 중 ‘꼴찌’”, 공무원수험신문.
박기석.(2022.04.06). “여성 의원·관리자 OECD 최하위인데…새 정부 ‘할당제 폐지’에 더 후퇴하나”, 서울신문.
임재우.(2022.04.19). “여성후보 추천보조금은 어쩌다 ‘거대정당 보너스’가 됐나”, 한겨레.
김영빈.(2022.08.02). “인천시선관위, 지방선거 선거비용 보전금 155억여원 지급”, 인천인
성상훈.(2020.02.14). “기탁금 최고 5천만원…2030 ‘정치 진입장벽 너무 높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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