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과학과 대중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본지는 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적을 출판하고 있는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한 대표가 이끄는 동아시아 출판사는 지난 23년 동안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내고 있다. 23년째 책을 출판하고 있는 베테랑 편집자인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한국 과학출판계의 문을 열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는 자연스럽게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한 대표는 학부 시절 언어와 문자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이는 훗날 그가 출판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출판사 편집자의 역할은 저자의 글과 언어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에요”라며 “학부 시절 배웠던 전공이 지금 제 무기가 됐죠”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과학 도서를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대중에게 전파하고자 했다. 그는 일본의 다양한 과학 학습물을 읽으며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한 대표는 "일본 서점의 매대엔 소설과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과학책이 있었어요"라며 “어렵게만 느꼈던 과학을 책으로 읽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새로웠죠”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살려 출판사를 창업했다. 일본에 비해 초라한 한국의 과학 서적 매대를 본 그는 과학 출판계 진출을 다짐했다.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선 대중을 위한 과학책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라며 “다양한 장르의 과학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죠”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국내 과학책 저자 발굴에 힘쓰며 출판사를 세상에 알렸다. 창업 초반 한 대표는 저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출판되는 과학 서적은 교과서와 해외 번역본뿐이었어요”라며 "외국 저자를 찾을 방법이 없어 국내 저자에 주목했죠"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출판사는 이명현 천문학자의 에세이집 「이명현의 별 헤는 밤」과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김대식 교수의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를 잇따라 출간했다. 그는 한국의 정서가 담긴 과학 서적을 출판해 대중과학서 시장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는 “훌륭한 국내 과학책 저자들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동아시아 출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시아 출판사 서적의 80%는 국내 작품이다.


‘과학의 변신은 무죄’
한 대표는 오랫동안 소수의 장르로 여겨진 공상과학 문학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는 지난 2016년 공상과학 문학 출판사 ‘허블’을 설립하고 한국과학문학상을 기획했다. 본 문학상을 받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올해 기준 30만 부가 판매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20년 출판된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제7회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허블’은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24권의 작품을 출간하며 공상과학 문학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글로만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지난 2017년 「메이커스」를 출판했다. 「메이커스」는 일본의 메이커 잡지 「어른의 과학」을 한국 정서에 맞게 출간한 것이다. 메이커 잡지는 카메라와 가습기 등의 조립 키트가 수록된 잡지다. 한 대표는 촉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과학을 학습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의 즐거움을 글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전달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다양한 감각으로 과학을 배우는 메이커 문화가 「메이커스」를 통해 한국에 확산하길 바란다.

한 대표는 책을 출판할 때 유행을 좇기보단 사회적 의제를 앞서 제시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평소 대중에게 알려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꾸준히 관찰한다. 한 대표는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는 소재들이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8년 한국 사회 화교의 역사를 기록한 이정희 작가의 「화교가 없는 나라」를 출판했다. 해당 책은 화교들의 행적을 추적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화교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어요”라며 “지금이 아니면 이들을 기록할 수 없다고 생각해 책을 출판하고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죠”라고 설명했다.

‘낯익게 하기’는 한 대표가 출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그는 지난 2018년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을 출판했다. 물리학을 다루고 있지만 문학적 제목이 붙은 해당 도서는 물리학 이론을 문학적 표현에 빗대어 설명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낯익게 하기를 통해 낯선 과학을 친숙하게 만들고 싶었어요”라며 “과학책도 소설책과 인문서처럼 친근하게 읽히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과감하고 유연한 사고, 세계로 향하는 첫걸음
그는 자신을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은 출판사 운영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동아시아 출판사 직원들은 하나의 메일 계정을 함께 사용한다. 직원들은 메일 계정을 함께 사용하며 직장 동료들의 업무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이 과정이 직원 개인의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직원들은 동료들의 각기 다른 업무 방법을 보며 새롭게 배울 수 있죠"라며 "직원 모두가 스승인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현재 출판계에 호기가 왔다고 말한다. 자동번역기와 빅데이터의 발달로 국가별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편집자는 정제되지 않은 말에 품격을 부여할 수 있어요"라며 "세계를 상대로 출판할 기회가 온 거죠"라고 설명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일각에선 출판계의 전망이 어둡단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전자책이 갖지 못한 종이의 속성을 강조했다. 한 대표는 “지식이 책이란 물질로 물성화돼 있다는 게 종이책의 장점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으로 하미나 작가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꼽았다. 본교 동문 편집자가 작업한 해당 책은 철학 전공자의 시선으로 여성 우울증 현상을 바라본다. 한 대표는 “우리 삶에서 과학을 빼곤 어느 것도 얘기할 수 없어요”라며 “과학이 심리학과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있단 걸 알아줬음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출판업계 진출을 희망하는 본교 학생들에겐 과감히 도전할 것을 추천했다. 한 대표는 학생들이 영화와 책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며 끊임없이 편집자 업무에 필요한 촉과 감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많은 경험을 쌓아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만의 뚜렷한 선호가 필요해요”라며 “한 분야를 파고드는 집요함 또한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한성봉 동아시아 출판사 대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뭐 어때?”다. 한 대표는 출판할 작품을 선택할 때 저자의 인지도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저자 선택에 있어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라며 “문자나 글이 재밌으면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도전정신 덕분에 새롭고 흥미로운 과학 도서가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우리도 그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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