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사진제공=문학동네)
<사진제공=문학동네>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린 효율성에 과하게 집착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같은 인사말이 유행하고 조금이라도 가성비 있는 행동을 한다. 효율성 없는 일을 하려 하면 곧바로 “왜 그런 걸 해?”란 비난 섞인 의문이 튀어나온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소설을 읽는 일 또한 그런 것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야말로 불특정 다수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주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 이유를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중략)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 ‘미주’와 ‘진희’ 그리고 ‘주나’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그러나 진희가 커밍아웃(Coming Out)하자 주나와 미주는 그 사실을 비난하며 진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 미주는 주나가 쏟아내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기 잘못을 직시한다. 독자는 ‘무해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의 모습이란 걸 알게 된다. 미주의 오만한 생각이 진희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소설은 어떤 관계이든 함께라면 서로에게 무해할 수 없단 사실을 잔인하지만 숨김없이 드러낸다.

필자는 소설 속 미주의 시선을 사회로 돌려봤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가지각색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미디어에 드러난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말을 얹는 사람들의 행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목소리는 적다. 여성혐오, 기후 위기, 아동 학대, 노동자 인권 등의 사회 문제는 그동안 화제성이 낮단 이유로 해결방안조차 논의되지 않았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더라도 당장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밀려 뒷전이 되곤 했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하는 삶에서 효율성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해해보려는 마음, ‘공감’이 앞서야 한다. 이 소설은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공감의 여지를 제공한다. 소설은 서로에게 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서늘하게 경고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불안을 외면하는 일은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름길이다. 더 늦기 전에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상 모든 진희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전자공학 20 이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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