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연합뉴스는 ‘서울대생들, 學內(학내) 성폭력 심각한 상태다(1994.10.05)’란 기사를, 지난 2015년 한겨레는 ‘성범죄 예방 의지 없는 대학들(2015.02.10)’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에도 동아일보에 ‘캠퍼스 성범죄 비상 걸린 대학가(2022.07.19)’란 기사가 실렸다. 대학은 여성 학생들이 위협받을 때마다 덧대기식 시공만 반복해왔다.

 

여성을 위한 캠퍼스는 없다
지난 3년 사이 대학 내 성범죄 사건은 지난 2016년 182건에서 2019년 346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지난 2020년 2월에 발표된 교육부의 ‘대학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대학 내 성범죄란 대학의 교원·직원·학생이 관련된 성범죄를 뜻한다. 교육부는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대학 내 총 1206건의 성폭력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신고자 중 91.9%가 여성이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 전국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발생 건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교육부에서 조사한 고등교육기관 성폭력 사건 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대학 내 여성은 각종 범죄에 노출된다. 지난 7월 서울권 A대의 교내 페미니즘(Feminism) 동아리가 교지를 배부하는 과정에서 압정 테러를 당했다. 이외에도 학내 페미니즘 동아리는 게시 포스터가 손상되거나 신상 공개 위협을 받는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 한지영 신체심리연구소 대표는 “학내 불법촬영, 주취강간, 데이트 폭력 등이 감소하지 않고 있다”며 “각 대학이 취하는 안전 조치의 효과가 부족하단 방증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7월 ‘대학 공동체는 불법 촬영과 성폭력 일상화, 누군가의 피해를 조롱하고 외면해온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현상이 반복된다.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대학 온라인 성적 괴롭힘 피해사례와 대응’ 연구에선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성에 대한 소문 및 루머 유포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낙인찍기 ▶신상 공개와 관련된 공포감 조성 ▶일상화된 성희롱 표현의 문제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원대 재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에서 여성 학우들의 복장이나 신체를 거론하는 성희롱 글을 본 적 있다"며 "해당 커뮤니티에선 게시물 삭제로 대처하고 있지만 허울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대학 또한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지난 2019년 3월 마약, 강간 전과 18범이 필로폰을 들고 본교 여자 화장실에 무단출입했다. 박지원(통계 20) 학우는 "학교 외부인 출입 문제에 대해 자주 들어봤다”며 "제2창학캠퍼스 중앙도서관 입구에서 의도적으로 여성에게만 말을 거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5월엔 남자 중학생 3명이 속옷 차림으로 본교 제1캠퍼스 순헌관 앞 연못에 뛰어들었다. 6월에도 본교에서 가발과 흰색 치마를 착용하고 돌아다니던 30대 남성이 붙잡혔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교내 외부인 침입 사건에 대해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적 있다”며 “지난해에도 한 남성이 학생회관에 침입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권 B여대에선 지난 2018년 학교를 방문한 외부인이 강의동 화장실에서 음란행위를 한 사진을 올려 검거됐다. 서울권 C여대에서도 한 직장인 남성이 복도 의자에서 자고 있던 여학생의 신체를 만져 입건됐다.
 

밑 빠진 학내 안전에 물 붓기
허술한 학칙은 대학 내 여성안전을 위협한다.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가 자퇴하거나 졸업하는 경우 학칙을 통한 제재가 불가능하다. 자퇴의 경우 재입학이 가능해 가해 학생이 언제든 학교로 복귀할 수 있다. 지난 6월 서울권 D대에서도 같은 동아리원의 신체 일부를 촬영한 학생이 자퇴를 선택하면서 학칙에 따른 징계를 피했다. 지난해 E대에선 동아리 선후배 강제추행 사건의 가해자가 징계 없이 졸업했다. 징계를 결정하는 데에만 3개월이 소요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이 시행하는 공간분리조치는 강제성이 없거나 수업 공간으로 한정됐다. 강의실 밖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경우 제재할 수단이 없다.

캠퍼스 치안정책과 순찰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달 교육부에선 야간 출입 통제와 CCTV 증설을 핵심 내용으로 ‘인하대 학생 사망 사건 관련 대응 및 조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학 안전의 핵심인 경비인력 실태조사 및 확충이 해당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우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치안 정책의 부족은 순찰 공백으로 이어진다. 지난 7월 교내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 인하대의 경우 경비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순찰 구역이 2만평이 넘었다. F대에서도 14만평에 달하는 교내를 순찰하는 총경비 인력이 11명뿐이었다.

건전한 캠퍼스를 만드는 인권·성평등센터도 존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고등교육법에 ‘학교는 구성원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해 인권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인권센터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할 뿐 설치의 책임 소재까지 규정하지 않았다. 센터를 유지하기 위한 예산도 부족하다. 지난해 ‘대학인권센터 기관장 업무 수행 중 애로사항’ 설문조사 결과 ‘전담 인력 및 예산 부족’이 전체의 12%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의 ‘2019년 대학 내 성평등 기구 설치 현황’에 따르면 성평등 기구를 독립적으로 설치한 대학은 협의회 소속 59개 대학 중 12곳에 불과했다. 이들 중 47곳은 학생상담센터나 보건소 등에서 해당 업무를 병행했다. 백석대 김수현(디자인영상과 22) 씨는 "대학을 다니며 상담센터가 있단 정보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며 "상담센터의 실효성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권 34개 대학 중 ‘(양)성평등 센터’가 독립적으로 설치된 학교 비율을 나타낸 그래프다

 

함께 만드는 안전한 학교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을 마련해야 한다. 학칙은 법적 효력이 없어 민·형사 처벌이 가능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 초·중·고교에선 ‘학교폭력예방법’에 의해 ‘피해 학생의 보호를 위해 학급교체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직장에서도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근무 장소의 변경과 유급휴가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엔 이를 규율하고 있는 법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기본법’에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조문 추가해야 한다고 ‘2019 대학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에서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목원대 재학생은 "학칙을 통한 징계를 넘어 더욱 강력한 법적 처벌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본부는 교육을 실시해 잘못된 성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공공기관인 대학은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그 실적을 매년 보고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성폭력과 가정폭력 예방 교육 이수율’은 30% 수준에 그쳤다. 한 대표는 “대학 공동체 속에서 학기 초, 학기 말에 주기적으로 성범죄 현황을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성범죄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해 예비 가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충북대 재학생은 "상담센터에서 학우들의 의견을 학교 측에 공론화시켜야 한다"며 "여성 학우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도 활성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권·성평등센터의 지위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 대학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및 정책에 관한 설문’에서 상담센터 독립성 보장, 행정 체계 일원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또한 정부의 거점지원센터를 설치해 대학에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담시설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본교 황혜미 인권센터 선임연구원은 “학내 성범죄 사건 발생 시 본교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공식 지원 절차를 따르면 된다”며 “본교 학생이라면 언제든 성평등상담소와 인권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한다. 대학이 앞장서 학칙을 강화하고 시설을 정비 해야한다. 본교 정지영 총무구매팀 과장은 “최근 본교는 캠퍼스 안전 확충을 위해 취약 지역에 CCTV를 설치하고 제1캠퍼스 전체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참고문헌
신상숙. (2012). 대학 캠퍼스의 권력형 성희롱·성폭력,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인권센터 공동주최 학술포럼.
(사)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 (2020). 대학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 교육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 대학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실태조사 보고서. 교육부.
국가인권위원회. (2019). 대학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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