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학문’이란 단어 탓에 낯설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우린 가까운 곳에서 여성학을 접할 수 있다. 본교 학생이라면 여성학 강의를 수강하거나 여성학 동아리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일상 속에서 친구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여성학을 논할 수도 있다. 지난 학기 본교 여성학 과목인 ‘여성과 리더십’을 수강한 최지현 학우(소비자경제 21)는 “사회에서 원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 스스로 많은 희생을 해왔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성학은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여성을 광장으로 이끌다
여성학의 사전적 정의는 ‘여성의 입장에서 기존 학문을 재평가하고 성적(性的) 편견을 지양하는 학문’이다. 1960년대 후반 서양에서 시작된 초기 여성학은 학계에서 배제됐던 여성을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성학은 여성의 시선에서 경제·정치·가족·역사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977년 이이효재 이화여대 교수가 여성학을 처음 도입했다. 여성학의 수요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건 지난 2016년부터 확산된 ‘미투 운동’이었다. 김영선 성공회대 실천여성학전공 주임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모두에서 여성학 담론이 활발히 오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은 하나의 학문 분야를 넘어 학제적 성격을 지닌다. 여성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법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의 지식이 필요하다. 여성이 받는 차별은 하나의 학문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성 불평등의 원인은 사회 구조 속에 서로 맞물려있다”며 “여성학은 기존 학문과 연결해 간학문적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학에선 법제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성학이 주목하는 주요 의제인 성별 고정관념·여성노동·여성에 대한 폭력 모두 법제도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여성학은 법제도가 왜곡되는 맥락을 연구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도록 노력한다. 지난 2007년 폐지된 호주제는 제도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아래 곡해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신분을 기록하는 제도다. 법에 명시된 내용에 따르면 성별과 관계 없이 누구나 세대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엔 오직 남성만 세대주로 등록됐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만 호주가 될 수 있단 성차별적 인식이 있었다”며 “그 결과 세대주에게 제공되는 연말 소득공제와 청약저축 신청 우대 혜택이 남성에게만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가려진 여성학의 가치를 찾아
일부 사람들은 여성학을 ‘여성만의 학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지난 2019년 연세대에서 젠더 인권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자 일부 학생이 반발했다. 해당 학생들은 필수과목 지정이 소수자의 인권만을 보장하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선 여성과 남성 각 28.4%와 56.8%가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의 남성비하와 남성혐오주의를 내포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인식과 달리 여성학과 페미니즘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없애고자 한다.

여성학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기득권에 반발하려는 여성학의 관점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김 교수는 “여성만을 위한 학문이 아닌 기득권의 안정성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본교 여성학 과목을 수강한 김하은(소비자경제 21) 학우 또한 “여성학은 일상의 불평등을 인지할 수 있게 돕는 학문이다”고 말했다. 

여성학은 여성 운동 실천의 학문적 기반이다. 여성학을 공부한 여성은 자신이 겪는 불평등을 인지해 진정한 성평등을 이루고자 행동에 나설 수 있다. 1980년대 여성들이 직접 노동권을 쟁취한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과 달리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1980년대는 급속한 경제 개발로 소득 수준이 향상돼 여성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여성들은 여성학의 부흥에 힘입어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고자 시위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돼 직장 내 성희롱 금지, 임금 보장이 명문화됐다.

우린 지금 여성학도가 필요하다
국내 대학은 여성학 강의 개설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전국에 있는 4년제 대학 중 단독으로 여성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없다. 서울대의 여성학 관련 강의 수는 지난 2004년 26개였지만 2020년엔 12개로 감소했다. 여성대학인 본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여성학협동과정이 폐지되며 여성학 관련 교육 과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올해 2학기 기준 본교에 개설된 여성학 강의는 ‘여성과 리더십’ 한 과목뿐이다. 그마저도 수강신청을 하는 학우들의 수가 폐강 기준인 40명보다 부족해 담당 교수가 직접 강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성평등한 사회 구축을 위해 대학 내 여성학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 학생들은 여성학 수업에서 여성의 노동 현실과 같은 젠더 역사를 배운다. 나아가 성별 간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학습한다. 김 학우는 “지난 학기 여성과리더십을 수강하며 세상 속 불평등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학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의미한 학문이다. 현재 성공회대에서 ‘젠더로 세상보기’란 교양 과목을 강의하는 김 교수는 “40명 중 평균 5명의 남학생이 수업을 듣는다”며 “여성과 남성 모두 여성학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여성학 교육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여성학 강의를 수강하거나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학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학은 여성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 김 교수는 “여성학에 관심을 두는 학생의 신상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에 노출되기도 한다”며 “대학은 원하는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다변화되는 여성학 강의 수요에도 발맞춰야 한다. 여성학 교육 과정은 대학생이 관심 갖는 주제를 반영해 적절히 개편돼야 한다. 김 학우는 “많은 학우가 다양한 여성학을 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며 “여성학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지정하거나 P/F 수업으로 개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비교하면 부가적인 역할만을 수행해왔다. 여성학은 이러한 과거의 관습을 탈피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열쇠다. 여성학 공부는 여성을 향한 차별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더 많은 사람이 여성학을 공부할 때, 평등해진 사회가 우릴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참고문헌
정진성, 배은경.(1998). 대학에서의 여성학 교육의 필요성. 74-94.
김영선.(2022).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여성학의 도전과 새로운 실천. 현상과 인식, 46(1), 77-94.
이재경, 「여성학」, 미래인, 2007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여성학: 행복한 시작」, 신정, 2014
오은선.(2019.08.20). “페미 강의 들으면 취업 불이익? 대학가로 번진 젠더 갈등”, 파이낸셜뉴스.
김윤덕.(2022.05.06). “국민 67% “젠더갈등 심각”… 한국 남녀, 왜 서로에게 분노하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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