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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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리지>는 지난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Massachuset)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인 ‘보든가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뮤지컬엔 도끼로 살해당한 아버지와 그의 새 부인, 주인공 ‘리지’, 리지의 언니 ‘엠마’, 친구 ‘앨리스’, 집 관리인 ‘브리짓’이 등장한다. 뮤지컬 <리지>는 리지가 살인으로 인해 재판받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지는 아빠와 새엄마 모두를 죽였다. 우린 리지가 아빠를 죽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리지의 아빠는 어릴 때부터 리지를 학대했다. 그는 아버지로서 제대로 된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는 살인보단 리지의 해방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극 중 배경에 따르면 리지의 아빠는 죽어도 마땅한 인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리지의 조력자인 엠마, 앨리스, 브리짓이 모두 여성이며 함께 연대한단 점이 인상 깊다. 뮤지컬 제2막에서 등장인물들은 옷을 현대식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이는 등장인물들이 리지의 편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지는 살인 용의자로 교도소에 수감돼 재판받는다. 엠마와 브리짓은 리지의 가정이 화목했다고 증언한다. 오직 진실을 추구하는 앨리스만이 ‘리지가 어릴 적부터 힘들었고 불안정했다’고 말한다. 실제 사건에서도 앨리스의 ‘리지의 피 묻은 드레스를 봤다’는 말이 정황상의 유일한 증거였다. 재판 중 앨리스는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스는 ‘리지의 드레스에 피 같은 건 없었어요. 그건 페인트였어요’라며 옷을 바꿔 입는다. 극 속 여성 간 연대를 강조하는 마무리였다.

최종변론에서 변호인단은 이렇게 진술한다. ‘모든 고결한 남성이 숭배하고 모든 관대한 남성이 사랑하며 모든 현명한 남자들이 은혜를 입었음을 인정하는 성별인 리지양이 욕망과 분노, 힘 그리고 집요한 증오를 하고 도끼로 살인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건가요?’ 이 대사는 필자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사건의 배경인 지난 1892년엔 여성들의 지위가 낮았고 리지는 가부장제의 피해를 보며 자랐다. 대사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리지의 무죄에 힘을 싣는다. 아버지에 의해 고통받던 리지에겐 최고의 증언이자 변호였다.

‘보든가 살인 사건’은 미제 사건이지만 범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는 현재를 사는 우리도 매일 체감한다. 따라서 가끔은 권선징악이 발현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사건은 네 명의 여성이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 락(Rock)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뮤지컬 <리지>는 2022년을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희열과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보든가 살인 사건이 130년을 넘어서도 관객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다.


IT공학 19 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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