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제3조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건 금지된다. 따라서 현행법상 대화의 당사자가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1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통비법 일부개정법률안엔 대화 당사자도 동의 없이 녹음한다면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사생활의 자유, 통신 비밀의 자유, 음성권 보호를 근거로 들었다. 이 중 음성권은 자신의 음성이 녹음‧재생‧녹취‧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동의 없는 녹음이 음성권을 우려할 수준까지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비밀 녹음을 통해 정당한 목적이나 이익이 발생하고 이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경우엔 위법성이 배제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대화 당사자의 녹음은 불법행위로서 재판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약자의 자기 보호와 공익 제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은 모든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일괄적으로 금지해 이 ‘녹음의 목적’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형식적인 법 때문에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녹음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놓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국가는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지하되 공익 차원의 녹음은 허용하고 있다.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지하고자 한다면 약자나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는 법안도 함께 마련됐어야 한다.

통비법 개정안은 지난 2008년과 2017년에도 발의된 바 있다. 그때마다 통비법은 약자보호, 증거능력과 같은 근본적인 논란에 휩싸여 왔다. 과거의 문제에 대한 논의 없이 비슷한 개정안이 제출된 것은 다른 의도를 의심해봐야 한다. 개정안의 대표발의자인 윤 의원은 지난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공천 배제를 내용으로 한 대화 녹음파일이 공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집 불 지르는 꼴을 국민들이 좌시할리 없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입맛대로 활용될 수 있는 법의 개정엔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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