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이따금 옛날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이는 것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때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많은 걸 이야기해 주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는 그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부모의 죽음으로 어릴 적부터 외삼촌 집에 더부살이하는 주인공 ‘춘희’는 어느 날 우연히 벼락을 맞게 된다. 그 이후 중학생 때부터 계속 살아오고 있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다.

어른이 된 춘희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고 마냥 반가워하지 않았다. 힘들게 외면했던 자신의 과거를 직면해서다. 얹혀사는 집에서 춘희는 늘 혼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왔다. 현재까지 선명히 남아있는 손의 흉터 역시 어릴 때부터 앓던 다한증 때문이었다. ‘불에 지지면 괜찮아지지 않을까’하는 어린 마음에서 만들어진 미숙함의 흔적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과거와 현재의 둘은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현재의 춘희는 더 이상 과거의 춘희를 외면하지 않는다. 현재의 일을 과거의 자신과 나누고, 과거에 겪은 일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과거를 바꿀 순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춘희는 점점 과거를 안아간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또 인정하는 건 어렵지만 우린 조금씩 성장한다. 춘희도 마찬가지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보듬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더 이상 자신의 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만난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지난날을 건너 ‘태어날 만했다’는 순간을 만들어 나간다. 

우린 늘 혼자라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 곁엔 가장 친한 친구인 자신이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춘희는 아마 그들을 위한 ‘또 다른 나’일 것이다. 

지난해 봄, 날이 너무 좋아 문득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영화관에 들른 필자는 그곳에서 춘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올해 봄,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가 정식 개봉해 우리 곁을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은 우릴 들뜨게 하지만 동시에 나른하게 만든다. 올해도 어느덧 지나가 버리는 계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봄이 가도, 꽃이 져도, 그래도, 우리는 태어나길 잘했어.

 

글로벌협력 20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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