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말]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사는가. 남 부러울 것 없는 삶, 보장된 노후, 내 집 마련 등의 꿈을 품은 또 하나의 이력서가 오늘도 휘발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매번 들려오는 건 탈락이란 씁쓸함이다. 조금 더 쉽게,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물론 그 지름길이 ‘평등한’ 지름길이라면 말이다.

정계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려면 ‘자녀 검증’이 필수인 시대다.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일단 자식부터 물고 늘어진다. 상대가 맘에 들 일은 없으니 이는 비단 한 당의 이야기는 아니다. 안 하면 아쉬울 정도로 모든 당이 같은 행태를 보이고 우린 이걸 ‘내로남불’이라 속되게 부른다. 그리고 로맨스와 불륜에서 우린 뜻밖의 좌절을 맞이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위가 아닌 결과물에 집중해보자. 의대 합격을 누가 기뻐하지 않을까. 군대 대신 ‘승마’라는 훌륭한 선택지를 누가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배울 만큼 배운 부모의 자식이라면 스스로 거부할 사고 정도는 가능하리라 믿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지식이 지름길을 감추는 수단으로 사용된단 점이다. 

많이들 경험하지 않았는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건만 사실 성공의 주인은 내정돼 있던 순간 말이다. 필자는 여러 번 경험했고 침묵했다.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쟤보다 잘하면 되겠지’라며 필자 자신을 북돋웠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굳이 이 글에서 실명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가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공식적인 시간은 따로 흘러간다. 부모가 벌어 놓은 돈으로 맛있는 것을 먹는 그 순간은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을 작성한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무엇이 그를 양심조차 없는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그의 도덕성 결여가 아닌 부모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믿고 싶어질 뿐이다.

어쩌면 ‘평등한’ 지름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노력을 들였으면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왜 그들에겐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을까. 부모가 지름길을 제시해도 성인이라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가 공직자거나 친인척이 부유해도 그들이 이 특권을 누릴 권리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길 바란다. 당신보다 적게 자고, 몇 배는 많이 공부한 또래가 당신보다 못한 결과를 받았을 때. 당신은 그를 진심으로 위로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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