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자식은 어머니임에도 고인을 위한 마지막 절은 사위인 아버지의 몫이었다” 정주민(IT공학 19) 학우가 지난해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경험한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고인과의 관계보단 남성중심적 장례절차를 따른다. 정 학우는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선택권을 박탈당했단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장녀 대신 남동생, 딸 대신 사위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에선 성별에 따른 역할 및 의상 구분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지난 2020년 발간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 ‘가부장적 가정의례 문화의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는 장례절차에서 주요 역할이 남성에게 편중됐음을 드러낸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상주, 영정사진 및 위패 들기 등은 주로 남성이 맡는단 응답이 95%에 달했다. 이어 응답자 중 85%가 여성이 주로 음식을 준비하고 조문객을 대접하는 일을 담당한다고 답했다. 성별에 따른 의상 또한 남성은 검은 양복에 완장, 여성은 검은 치마저고리에 작은 리본 머리핀으로 구분됐다.

집안에 아들이나 사위가 없어야만 여성 상주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상주는 장례식에서 공식적인 주관자 역할을 맡는다. 대부분의 경우 장녀 대신 남동생에게, 아들이 없으면 사위에게 우선권이 부여된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홈페이지의 기본 상례 예절은 상주가 되는 사람을 장자, 장손, 남편 등으로 나타낸다. 가족 구성 변화와 같은 사회변화로 성별에 관계없이 상주가 될 수 있어야 한단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유교 사상 속 가부장제는 현재의 남성중심적 장례문화에 일조했다. 남성이 상주를 맡는 관행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에 성행한 유교에 따르면 상주는 장애나 질병이 없는 장남 또는 장자였으며 이러한 관습이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은 “중요한 사회적 역할에서 여성을 배제한 전통 유교문화가 장례관습에 남아있다”며 “장례문화 개선을 시작으로 가부장적인 사회질서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준비없이 진행되는 장례 특성상 남성중심적 문화를 되돌아보긴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한 생전 논의와 장례에 대한 준비가 예의에 어긋난단 인식이 만연하다. 이에 삼일장 혹은 오일장을 경황없이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성차별적인 장례문화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긴 쉽지 않아 기존의 형식 그대로 관례가 치러진다. 로리주희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센터장은 “전통이란 이유로 이전의 장례문화를 답습하고 있지만 이를 성찰하긴 쉽지 않다”며 “장례를 치른 뒤 장례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마지막 인사엔 성별이 없다
장례문화가 현 사회상에 맞지 않음은 다수가 인지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동일한 보고서에 따르면 약 90%가 성별에 따라 역할을 한정하고 차별하는 장례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를 주제로 시민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했다. 해당 공모전엔 고인을 대하는 과정에서 성별에 따른 역할 제한이 있단 사실에 문제가 제기됐고 성별에 관계없이 가족이라면 동등하게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단 내용이 담겼다. 정 부장은 “장례절차에서 성적으로 평등한 역할배분은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기존의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고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장례문화는 고인과 유족 간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현대의 장례는 고인을 존엄성 있게 보내는 예다.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유족들이 위로받으며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회복하도록 돕는 절차기도 하다. 성별에 따라 고정된 역할을 부여하기보다 고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의미가 있는 사람이 장례식의 진행 주체를 맡는 것이 장례 의미에 더 부합한다. 정 학우는 “장례 절차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것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자리에서 특정 성별이 차별받아 유감이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논의로 성평등적인 장례문화를 만들 수 있다. 준비 없는 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별적인 장례문화는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장례식을 계획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전 논의를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장례에서의 역할분담이나 고인이 원하는 장례식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고인과 유족이 죽음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문화가 보편화되면 관계 중심적인 의미 있는 장례문화가 다가올 것이다”고 설명했다. 로리 센터장은 “사람들이 장례에 관해 고민하고 나아가 죽음에 대해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성평등한 장례절차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 상주에 대한 의견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논의한 방식의 장례도 존중해야 한다. 이 교수는 “상주의 역할은 당연히 남자여야 한단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장례종사자 교육에서 갇힌 사고를 개선할 수 있는 교육들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례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불평등한 장례문화를 재생산한다. 지난 2020년 10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건전가정의례정착지원법 폐지법률안’을 발의했다. ‘건전가정의례정착지원법’은 장례가 있을 경우 상주는 배우자나 장남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이 의원은 ‘‘건전 가정의례 준칙’은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개인 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규제다’고 발의 취지를 전했다. 현 장례문화가 고인과 유족 그리고 유교적 관행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진 명백하다. 장례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고인과 유족을 위한 논의로 장례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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