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공약은 정치권에서 표심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성별 간 격차를 좁히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방역에 있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의 양성평등정책을 책임지는 정책 기관이다. 본지 기자단은 지난 2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대표이사인 정연정(정치외교 91졸) 동문을 만났다. 비서실을 거쳐 안쪽에 위치한 대표이사실로 들어가자 정 동문이 밝은 표정으로 기자단을 맞이해줬다.


정치 격동기와 함께한 대학시절
정연정(정치외교 91졸) 동문은 온 국민이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했던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진 지난 1987년 본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학교 공부보다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정 동문이 신입생일 당시 교내에서 학생 운동이 전개되며 강의동이 폐쇄되고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정치 격동기에 시작한 대학생활은 정 동문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외교관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교에 진학했었어요”라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치외교학 공부를 이어가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서강대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엔 취업 대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결정이 어리석게 여겨진 시대였어요”라며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사람은 소수였죠”라고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정 동문은 과외활동과 학원 강사 일을 병행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는 “학비를 제외한 금액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으려 노력했었어요”라고 말했다. 

석사 과정에선 새로운 어려움이 정 동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들과 토론하며 가치관을 공유했던 학부생 때와 달리 석사 과정에선 정 동문이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그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타협하고 저의 생각을 조정해야 할 때 괴로움을 느꼈어요”라며 “교수와 남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웠고 비흡연자인 저는 그걸 감내할 수밖에 없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해외로 박사 과정을 진학한 정 동문은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그는 “언어 장벽으로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어요”라며 “학업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라고 유학 시절을 회상했다. 타향살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랜 석박사 과정은 정 동문이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석박사 과정을 마친 정 동문은 이후 우리 사회의 노동 의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우리’를 위해 달려온 시간
박사과정을 마친 후 정 동문은 본교 아시아여성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부임했다. 선배였던 본교 이경숙 전 총장의 제안으로 아시아여성연구원에 합류한 정 동문은 기관의 규모를 늘리며 여성학 성장의 기반을 닦았다. 그는 “연구원에 합류했던 시기인 지난 2001년엔 국내 여성학자가 많지 않았어요”라며 “여성학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술 연구를 진행했죠”라고 말했다. 소수에 불과했던 연구원의 수는 약 10명으로 증가했고 박사급 연구 인력도 크게 늘었다. 정 동문의 활약으로 연구소는 크게 성장했으나 그는 한때 병증을 앓기도 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높았어요”라며 “스트레스로 급성 갑상선염을 앓게 돼 살이 38kg까지 빠진 적도 있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동문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가 되기 전 연구계와 교육계에서 이력을 쌓았다. 그는 지난 2004년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정당의 정책 자문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 기관의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약하며 YTN, CBS 등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책 자문을 이어오던 중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대표이사직을 부탁받았다. 그 후 지난해 8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아이 돌봄 서비스, 여성 스타트업 지원 등 여성의 삶과 직결된 모든 현장을 지원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복합문화공간인 ‘서울여성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엔 서울 직장 성희롱 성폭력 예방센터 ‘위드유’부터 ‘여성긴급전화 1366 서울센터’까지 여성을 위한 수많은 기관이 입주해 있다.

한 조직의 수장을 맡는 일엔 책임과 함께 부담이 따르기도 했다. 정 동문은 대표이사 직위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원들의 삶과 소명이 저에게 달려있단 점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라면서도 “항상 적극적으로 재단의 일에 임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볼 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요”라고 말했다.

"여성가족 정책, 미래를 향해야"
정 동문은 여성가족 정책이 성별 격차뿐만 아니라 구조적 격차와 차별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가족 정책이 지난 2015년 제정된 양성평등기본법 이후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 동문은 정부 부처의 명칭을 바꾸는 시도만으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 불평등, 일·육아 양립, 성범죄 등 우리 사회에 성별 간 격차가 존재한단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라며 “세대, 소득과 같은 구조적 격차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정 동문은 공공정책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했다. 그에게 정책이란 현장성이다. 그는 “정책은 현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동문은 정책이 시대와 환경을 반영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불안정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선 상황에 맞춰 정책을 유연하게 개선하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다양한 삶의 목표를 세워온 정 동문은 임기 동안 재단이 서울시 여성가족 정책 업무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업무가 정책을 단순 보조하는 기관으로 전락해선 안돼요”라며 “여성의 생활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최전선에서 해결하고 여성가족 정책을 선도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3년간의 임기가 종료되면 정 동문은 반려견 ‘여름이’와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정 동문은 “정책의 질이 어떤가에 대해선 매 순간 고민하지만 정작 제 삶의 질은 돌보지 못한 것 같아요”라며 “개인적인 삶을 돌아볼 시간도 필요해요”라고 사적인 목표를 공유했다. 

정 동문이 공공의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과 타인이 이어져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 동문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공동체 정신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공동체를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정 동문은 “자신과 타인이 별개일 수 없음을 기억하고 나를 둘러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린 울퉁불퉁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이 고될지라도 순간의 작은 성공이 모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위치에 서게 된다. 정 동문의 삶 또한 그렇다. 그는 누구보다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숙명인. 미래엔 당신도 이 커다란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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