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에 대해 생각해보자. 잘 보존된 울창한 숲,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철조망, 북한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 등 다양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눈길을 끄는 전시가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지난 3월 25일(금)부터 오는 24일(화)까지 ‘DMZ, 사람들’ 기획전을 개최한다. 해당 전시는 ‘민간인 통제 구역’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무장지대가 희망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비무장지대에 사는 ‘평화의 아바타’
민간인 통제 구역이지만, 그곳엔 마을이 있고 사람도 산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이번 기획 전시 ‘DMZ, 사람들’엔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있다. 통제 구역 주민들의 삶을 다루는 이번 전시엔 ‘리덕수’ ‘이부록’ ‘임흥순’ 총 세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비무장지대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는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총 4km 범위에 해당한다. 해당 지역은 지난 1953년 7월 우리나라와 북한의 군사 정전협정으로 정립됐다. 정전협정문에 따르면 비무장지대는 적대행위 발생을 방지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수행한다. 이후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긴장이 지속돼 휴전선 남쪽으로 5~20km까지 민간인 통제선이 구획됐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1층 기획전시실에선 이부록의 <워바타_스티커 프로젝트 2022>가 관람객을 전시실 안으로 안내한다. ‘워바타’란 전쟁(War)과 아바타(Avatar)의 합성어로 전쟁의 복잡성을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관람객은 평화를 상징하는 워바타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벽면에 게시한다. 관람객들의 사진을 통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잔 메시지가 공유된다. 벽 앞에 마련된 탁자엔 전쟁의 폭력성을 경고하고 전쟁을 멈추자는 메시지를 담은 워바타 스티커 두 종류가 놓여있다. 관람객은 이를 자유롭게 몸에 부착한 후 사진을 찍어 ‘#워바타’ ‘#스티커프로젝트’를 포함해 SNS에 게시함으로써 워바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6개의 사람 모양 픽토그램을 통해 희망찬 통일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부록 작가의 '워바타_DMZ Museum 2022'가 기획 전시실 입구 벽면에 부착돼있다.
▲6개의 사람 모양 픽토그램을 통해 희망찬 통일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부록 작가의 '워바타_DMZ Museum 2022'가 기획 전시실 입구 벽면에 부착돼있다.

설치 예술가 이부록은 분단의 아픔을 픽토그램 이미지에 투영하는 작가다. 그의 과거 작품은 군모를 쓰고 총을 들고 있는 사람, 머리가 톱니바퀴 모양으로 변한 사람,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 등 전쟁의 비애를 표현한 사람 위주였다. 그러나 이번에 전시된 <워바타_DMZ Museum 2022>엔 사람 모양의 픽토그램이 파괴된 부분 없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각 픽토그램은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평화를 소망하는 밝은 힘이 느껴진다. 워바타가 부착된 벽 옆엔 이부록이 직접 비무장지대 접경 지역을 다니며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는 작은 모니터가 놓여있다. 그는 마을 곳곳에 워바타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을 통해 분단된 삶도 평화로 화합할 수 있단 가능성을 보여줬다.

“돌처럼 굴러서라도 갈 수 있다면”

▲리덕수 작가의 설치 작품 '더 이상 내게 싸움이 남아있지 않다면'의 목재 구조물과 영상이 함께 전시돼있다.
▲리덕수 작가의 설치 작품 '더 이상 내게 싸움이 남아있지 않다면'의 목재 구조물과 영상이 함께 전시돼있다.

설치 작품 <더 이상 내게 싸움이 남아있지 않다면>엔 분단이란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작가의 소망이 담겼다. 리덕수의 해당 작품은 직육면체의 문을 닮은 구조물로, 문을 여닫는 것처럼 남북을 오가고 싶단 염원이 표출됐다. 작품 재료는 과거 개성공단 건설 당시 남북출입사무소의 폐목재다. 남북출입사무소는 현재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람객은 구조물 안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빔프로젝터 영상을 통해 리덕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영상 속 리덕수 작가는 파주시 민간인 통제 구역에 있는 통일촌과 해마루촌을 걸어 다닌다. 관람객은 영상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마을에 머무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관람객은 바닥과 벽에 게시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가천대 학생 19명이 통일촌 주민 인터뷰를 추상화로 재해석한 유화 그림과 임흥순 작가가 통일촌 및 해마루촌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 전시됐다.
▲가천대 학생 19명이 통일촌 주민 인터뷰를 추상화로 재해석한 유화 그림과 임흥순 작가가 통일촌 및 해마루촌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 전시됐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한쪽 벽면엔 ‘드로잉 프로젝트 소풍’의 연작이 전시됐다. 통일촌 주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유화 그림과 임흥순 작가가 촬영한 사진이 나란히 게재됐다. 유화 그림은 가천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조소과 학생 19명이 작업했다. 이들은 분단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옛 세대와 분단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의 대학생이 예술을 통해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풍’이란 이름에 맞게, 관람객은 비무장지대 접경 지역의 자연 풍경을 추상화한 그림을 보며 숲을 거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리덕수의 목재 구조물 '구르는 것이 돌 뿐이랴'가 가운데에 놓여있고, 이부록의 '도보가방'이 세 면의 벽을 둘러싸고 있다.
▲리덕수의 목재 구조물 '구르는 것이 돌 뿐이랴'가 가운데에 놓여있고, 이부록의 '도보가방'이 세 면의 벽을 둘러싸고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리덕수의 <구르는 것이 돌 뿐이랴>와 이부록의 <도보가방>이 함께 전시됐다. 두 작가의 작품이 마치 한 사람의 전시품처럼 어우러져 관객들의 시선을 환기한다. 리덕수의 <구르는 것이 돌 뿐이랴>는 앞서 전시된 <더 이상 내게 싸움이 남아있지 않다면>에 사용된 것과 같은 폐목재를 사용했다. 3층으로 구성된 계단 모양의 구조물 위에 징 모양의 목재 원판이 놓여있다. 해당 원판이 남과 북 사이를 굴러 다닐 수 있도록 남북 간의 길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부록의 <도보가방>은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이다. 해당 가방엔 파란색 염료로 윗 부분엔 도보다리가, 아래엔 판문점이 그려져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도보다리와 판문점은 지난 2018년 4월 27일(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회담을 나눈 장소다. 이부록은 <도보가방>을 통해 남북 간의 화합과 지속적인 관계 형성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공간을 나타냈다.

흑백이란 배경 속 희망이란 색채
비무장지대인 파주시 통일촌, 해마루촌 주민의 생생한 삶이 담긴 <전망대>는 매시 정각마다 25분 동안 상영된다. 임흥순 작가의 다큐멘터리 <전망대> 속 주민들은 분단 전 한반도를 추억하며 당시 약도를 그려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말미엔 김성이 애기봉평화생태공원 문화관광해설사가 ‘요즘은 통일과 평화란 단어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남북한은 언제든지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돼야 하기에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고 인터뷰했다. 흑백으로 촬영된 해당 다큐멘터리는 배경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관람객이 인터뷰이의 말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영상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노래는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아동문학가 윤복진 작가의 <기러기>다. 눈 내리는 통일촌을 걷는 한 주민의 뒷모습이 보이며 흘러나오는 <기러기>는 해방촌 주민들의 목소리로 녹음됐다. 그의 노래가 해방 후 반공주의 사상으로 인해 한동안 대중들에게 불리지 못했단 것을 알고 나면 가사가 더욱 슬프게 들린다.

통일전망대에서 마주한 북한은 분단의 아픔보다 반가움을 불러일으킨다. 관람을 마친 뒤 통일전망대 3층 또는 4층에 도착하면 북한 지역을 살펴볼 수 있는 야외 전망대가 있다. 3층 전망 라운지에선 북한 지형을 설명하는 영상을 시청한 뒤 실제 북한 사람들의 거주지, 탈곡장 등을 망원경으로 찾아볼 수 있다. 날이 좋아 망원경 없이 북한 주민의 일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반가움은 더욱 커진다.


‘통일에 관한 다양한 입장을 취할 수 있어도 남북한이 한민족이란 사실은 기억하길 바란다’ 영상물 속 김성이 오두산 통일전망대 문화관광해설사의 당부가 기억에 남는다. 한 시간가량의 취재를 마친 본지 기자단은 오두산 통일전망대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쟁의 아픔조차 잠시 쉬어가는 비무장지대처럼 우리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마치 그들과 우리가 같은 한민족이었단 사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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