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해’ ‘택시 번호 문자로 보내놔’ 흔히 여성들이 귀가하며 친구와 주고 받는 말이다. 특히 혼자 사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넬 땐 말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은 집에 있을 때도 수시로 문의 잠금 장치를 확인하며 불안에 떨기도 한다. 왜 여성 1인가구는 최소한의 안전지대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집이란 공간에서 취약한 것일까.


여성 1인가구, 범죄 사각지대에 놓이다 
여성 1인가구는 주거침입 범죄에 취약한 다세대·가구주택에 주로 거주한다. 여성 1인가구 수는 지난 2010년 221만 8000가구에서 지난해 333만 9000가구로 증가했다. 최양희 용산구 가족센터 가족사업1팀 팀원은 “대부분의 2~30대가 학교나 직장 위치 때문에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연구원의 ‘서울 여성 1인가구의 주거 현황(2020)’에 따르면 20대부터 50대의 여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공간은 다가구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주택 밀집 지역에 건설되는 다가구주택의 특성상 공동 현관에 빛이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건물 출입자를 감시하기 어렵다. 또한 건물 외벽의 낮은 위치에 설치된 실외기와 가스 배관은 세대 침입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어 여성 1인가구가 거주하기에 위험한 환경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주거침입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17년 발행한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청년 1인 가구가 범죄 피해를 입을 확률이 남성에 비해 2.3배 높았으며, 주거침입 범죄에 있어선 11.2배가 높았다. 지난 2019년 30대 남성이 한 여성을 뒤쫓은 뒤 집에 침입하려던 일명 ‘신림동 주거침입미수 사건(이하 신림동 사건)’은 여성 1인가구 대상 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최 팀원은 “남성 1인가구에 비해 혼자 거주하는 여성들이 상담에서 더 많은 불안감을 호소한다”고 설명했다.

신발장에 남성용 신발을 두거나 빨래 건조대에 남성용 속옷을 널어두는의 행위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여성 1인가구는 남성의 목소리로 녹음된 ‘보이스 가드(Voice Guard)’ 영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튜브(Youtube)에 보이스 가드를 검색하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 기부’ ‘자취생을 위한 목소리 기부’ 등 다양한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영상엔 ‘누구세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등 타인에게 혼자 거주하는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문장이 녹음돼있다. 이처럼 여성 1인가구임을 일시적으로 숨기는 행위는 특정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실질적인 범죄 예방엔 효과가 없다. 여성 1인가구의 거주 환경은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 ‘여성 혼자서도’ 안전한 공간이 돼야 한다.

'여성 혼자' 살아도 안전한 공간
주거침입 범죄의 낮은 형량은 여성 1인가구 대상 범죄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다. 현재 시행되는 형법상 주거침입 범죄의 법정형은 3년2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선 주거 침입 후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중범죄로 취급해 더욱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대상의 주거침입 범죄는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형량을 가중해야 한다. 신림동 사건의 가해자는 최종 판결에서 주거침입 혐의를 인정 받아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신림동 사건과 같은 경우엔 징역 1년보다 더 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성범죄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여성의 집까지 따라가 침입하려고 했기에 추가 범죄에 대한 고의성이 뚜렷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흡한 여성 귀가 지원책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여성 안심 귀갓길’은 여성 1인가구가 밀집된 곳과 주거침입 범죄 신고 건수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여성 귀가 보호 제도다.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된 안심 귀갓길엔 유동인구가 적고 빛이 잘 들지 않으며 성범죄 및 주거침입 범죄의 신고 빈도가 잦은 지역이 선정됐다. 해당 장소엔 경찰을 바로 호출할 수 있도록 비상벨과 CCTV가 부착된 가로등이 설치되고 지면에도 페인트로 안심 귀갓길임이 안내된다. 그러나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의 2180개 안심 귀갓길 중에서 비상벨이 없는 곳은 781개소, 노면 표시가 없는 곳은 900개소가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혼자 거주하는 여성이라면 집에 돌아가는 길이 더 무서울 수밖에 없다”며 “CCTV가 있어도 범죄자의 신상을 특정하기 어려울 수 있어 더 확실한 예방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소속 ‘사회적 공존을 위한 1인가구 TF(이하 사공일가 TF)’는 주거침입 범죄의 형량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사공일가 TF는 지난 1월 27일(목) ‘1인가구의 사회적 공존을 위한 법제도 개선 결과 발표’에서 주거침입 범죄의 법정형을 상향할 것을 요구했다. 낮은 징역과 벌금이 부과되자 여성 1인가구는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학우는 “범죄자가 금방 사회로 복귀한다면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여성들의 두려움이 클 것 같다”며 “보복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처벌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지자체 차원의 여성 주거 안전 사업이 실용적인 대책으로 시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여성 1인가구 안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안심홈세트’를 무상 제공하고 있다. 이는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휴대용 긴급 벨, 문의 잠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안전 센서’, 누군가 벨을 눌렀을 경우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전송해주는 ‘스마트 초인종’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최 팀원은 “여성 1인가구가 범죄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도록 시행된 안심홈세트 사업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용산구 가족센터는 여성 1인가구의 고립을 방지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공동체’로 불린다. 여성 1인가구가 현대의 새로운 가족 형태라면, 사회도 그들의 가족이 돼야 한다. 여성 1인가구의 생활 안전은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여성이 자신의 주거 환경을 의심하지 않고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실질적인 보호 제도와 지원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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