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시위 외에도 장애인의 이동권 개선을 위한 노력은 휠체어 이용자의 집단적 승하차 운동이나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운동 등으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도 장애인 이동권 개선에 대한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없을 무’에 ‘뜻 의’로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만드는 홍 이사장과 함께 장애인 이동권의 내일을 살펴보자.
 

갈 곳 잃은 ‘두 바퀴’
지난 2011년 홍윤희 이사장은 장애인 이동권의 부재를 마주했다. 휠체어를 탄 자녀가 지하철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홍 이사장은 “장애를 가진 자녀가 불안함과 불편함을 느끼지 않길 바랐어요”라며 “제 아이가 걱정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죠”라고 말했다. 자녀로부터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직면한 홍 이사장은 장애인의 일상 속 불편함이 해소되길 원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휠체어에 탑승한 자녀가 함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휠체어에 탑승한 자녀가 함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다.

홍 이사장이 마주한 불편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장 난 휠체어 리프트에 붙어있던 것은 수리에 대한 공지가 아니라 우회 표지뿐이었다. 그는 “해당 역에 연락하니 노선마다 담당자가 다르단 답변을 받았어요”라며 “각 담당자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죠”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들은 40분 이상 소요되는 우회 통로로 향했고 홍 이사장은 당시 경험을 주변에 알렸다. 그의 글이 언론을 통해 주목받은 후에야 국토교통부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라며 “목소리를 내면 사회가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죠”라고 말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홍 이사장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펀딩을 시작했다. 지인과 휠체어 이동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스토리펀딩’으로 장애인 이동권의 실태를 알리자는 의견이 나왔다. 스토리펀딩은 비디오와 글을 통해 상황을 알려 후원금을 투자받는 방식이다. 그는 “펀딩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환기되길 기대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홍 이사장은 휠체어를 탄 자녀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해당 영상은 3개월 동안 약 600만원의 후원금을 모으며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무의미를 위한, 유의미한 일들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홍 이사장은 펀딩으로 모은 돈을 지하철 내 휠체어 안내표지 제작에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지원 단체인 ‘푸르메 재단’과 김건호 공동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홍 이사장은 “김 이사는 미국에서 휠체어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요”라며 “김 이사가 제안한 무의란 이름이 발음도 쉽고 의미도 좋았죠”라고 회상했다.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프로젝트(이하 환승지도 프로젝트)는 무의를 대표하는 활동이다. 본 프로젝트는 계원예대 김남형 교수팀과 함께 18개 역의 ‘고객 여정 지도’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서비스 과정에서 고객이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고객 여정 지도는 환승지도 제작에 기반이 됐다. 서울과 인천 지하철역 중 고속터미널역과 같이 복잡하거나 건대입구역처럼 우회로가 외부에 있는 18개의 역이 지도 대상 구역으로 선정됐다. 이후엔 각종 단체나 기업의 지원을 받아 더 많은 역을 포함시켰다. 

환승지도 프로젝트의 목적은 정보요청에 있었다. 홍 이사장은 노원역 답사 과정에서 비장애인 노인에게 폭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 경험을 주위에 전했더니 비장애인 노인을 환승지도 프로젝트 일원으로 만들잔 의견이 나왔어요”라며 “시니어 단체인 ‘서울시 50플러스센터’와 함께 지하철역 답사를 진행했죠”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노인들과 함께 답사를 진행하며 그들 스스로 교통약자 정보제공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환승지도 프로젝트를 통해 교통약자을 위한 정보제공이 촉구되자 지난 2018년 상반기부터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한국철도 시설공단 그리고 카카오(KaKao)가 교통약자 정보 상용화에 동참했다. 이후 카카오맵을 통해 장애인 화장실, 휠체어 리프트 및 수유시설 유무 같은 교통약자 정보가 추가됐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이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환승지도 프로젝트에 관한 발표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이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환승지도 프로젝트에 관한 발표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지난 2019년엔 홍 이사장은 서울 4대문안 휠체어 소풍지도(이하 휠체어 소풍지도)를 제작했다. 휠체어 소풍지도는 4대문 안을 포함해 그 주변의 경로와 편의시설들로 구성됐다. 그는 “자녀가 휠체어를 타고도 친구들과 소풍을 갈 수 있길 원했어요”라며 지도 제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서울 4대문안 지도를 펼쳐 보이며 경복궁의 경회루를 답사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향원정에서 국립민속박물관까지 가는 길이 휠체어로도 산책하기 좋아요”라며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곳곳에 잘 마련돼 있죠”라고 설명했다.

▲무의가 제작한 서울 4대문안 휠체어 소풍지도 중 경복궁의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무의가 제작한 서울 4대문안 휠체어 소풍지도 중 경복궁의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가고싶은 곳은 어디든지”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한 홍 이사장의 꾸준한 활동은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냈다. 지난 2019년 홍 이사장이 진행한 ‘#휠체어를_탄_라이언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그는 휠체어를 탄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챌린지를 통해 휠체어에 탑승한 캐릭터의 그림이나 사진을 공유받았다. 이후 홍 이사장은 연령, 성별, 국적,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택시 구상에도 참여했다. 기존의 장애인 콜택시는 등록된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홍 이사장은 간단한 조작으로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택시를 그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이용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며 “인식 개선을 위해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죠”라고 말했다.

최근 홍 이사장은 서울 지하철역 50개를 목표로 역 주변 편의시설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는 화장실, 편의점, 카페와 같은 편의시설 중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곳을 확인할 예정이다. 자원봉사자 그룹 ‘휠체어 특공대’와 함께 자료를 수집해 지도를 제작하는 회사나 공공기관에 전달할 계획이다. 그는 “장애인이 복지관이나 병원 말고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의 목록을 만들고 싶어요”라며 “지도 어플을 제작하는 기관이나 회사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라고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라고 말한다. 생각을 공유하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하게 된다. 그는 “무의도 제 어려움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어요”라며 “많은 사람이 전문지식과 기술을 공유해준 덕분에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따뜻한 말을 들으며 성장하길 희망했다.

숙명인에게 홍 이사장은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살펴볼 것을 권유했다.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 비장애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선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으로 이동할 수 없어요”라며 “사람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를 탈 때 어려움을 느끼죠”라고 말했다. 이어 홍 이사장은 일상생활에서 교통약자를 대할 때 먼저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이 필요한지 질문해보길 부탁했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본지 기자들은 발아래를 살폈다. 휠체어에 탑승한 채 오를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홍 이사장과 무의는 장애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은 무의한 세상을 꿈꾼다. 그들이 소망하는 일상 속 장벽들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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