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얽힌 다양한 시선들을 예술로 풀어낸 이가 있다. 시각예술가 김은진(산업디자인 04졸) 동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필명인 ‘봄로야’는 시각적 의미의 ‘봄’과 따뜻하면서도 예민한 계절인 ‘봄’을 함께 나타낸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코로나19로 인해 김 동문에게 봄은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됐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주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며 “이름에 책임감이 더해지는 요즘이네요”라고 말했다. 김 동문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의 시선이 담긴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자.


‘봄로야’가 되기까지
예술가를 꿈꾼 김은진(산업디자인 04졸) 동문은 본교 활동을 통해 예술가란 꿈에 한 걸음 다가갔다. 학창 시절 김 동문은 막연히 ‘예술을 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이후 본교 디자인과에 입학했지만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진 못했다. 그는 학교를 다니며 천주교 연합동아리처럼 예술과 관련 없는 활동에도 참여했다. 우연히 활동한 종교 동아리에서 그는 시대 비판적 사고가 종교 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김 동문은 “동아리에서 진행된 작고 큰 모임에서 한국사의 여러 단면을 배울 수 있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재학시절 김 동문은 항상 예술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이었다. 그는 재학시절 인상 깊게 들은 수업으로 정연두 현대 미술가의 사진 수업을 꼽았다. 해당 수업 이후 김 동문은 정 미술가의 국제미술전 ‘보라매 댄스홀’(2001)에서 잠시 조수로 일했다. 그는 “기교 중심적 예술이 아닌 다채로운 작품들이 있음을 알게 해줬어요”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김 동문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글, 그림, 노래와 같이 여러 분야를 체험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디자이너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글과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담아내려고 시도했어요”라며 재학시절을 회상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김 동문이 성장할 계기를 줬다. 시각디자인의 상업적 영향력은 컸지만 김 동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구론 적합하지 않았다. 진로에 대한 끝 없는 고민은 대학원 진학 후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며 해소할 수 있었다. 김 동문은 현대 미술가, 디자이너, 뮤지션, 큐레이터 그리고 기획자 등의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는 대학원 재학 중 그들의 작업 과정을 보며 작품을 보는 눈을 키웠다.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어요”라며 “한계가 없는 예술 분야에서 디자인이란 틀에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었죠”라고 말했다.

“예술로 소통해요”
김은진 동문은 여성, 일상, 도시로부터 영감을 받아 세상과 소통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로 지난 2016년 진행한 ‘답 없는 공간 : 근사한 악몽’을 골랐다. 해당 전시는 내면의 침체기로 무너진 김 동문의 작업 세계와 외부 환경을 함께 다룬 작품이다. 그는 “해당 전시는 제가 체념과 포기를 받아들인 후 다시 작업하게 된 과정을 담았어요”라며 “제가 가진 시선을 사회로 넓혀 사유하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최근엔 생태 시스템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 오드라데크’란 전시를 진행했다. 지난 11일(금)부터 진행된 해당 전시는 지역, 공공예술, 도시 생태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다뤘다. 본 행사는 오는 4월 7일(목)까지 용산구에 위치한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다양한 시각을 작품으로 전달하는 김 동문의 주 소통 도구는 ‘글’이다. 글은 그의 예술 작품의 시작점이 된다. 김 동문은 “글을 쓰면서 나오는 결과물들을 전시했어요”라며 “전시를 통해 해소할 수 없는 부분들은 책으로 정리하거나 새롭게 엮었죠”라고 말했다. 또한 김 동문은 ‘책보부상 페스티벌 2021’ ‘언리미티드에디션’ ‘퍼블리셔스테이블’과 같은 북페어에 참여해 책을 매개로 독자와 교류한다. 글이나 이미지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엔 음악을 이용하기도 했다. 김 동문은 과거 ‘봄로야 밴드’에서 보컬과 키보드를 맡아 <사라의 짐>이란 음반을 낸 경험이 있다.

김 동문은 문화재단과 학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서울문화재단 산하 ‘예술청’과 서울형 고교전환학년제를 도입한 ‘오디세이학교’의 일원이다. 김 동문은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인 예술청에서 운영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오디세이학교는 재학생들에게 1년간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대안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김 동문은 선생님이 아닌 ‘길잡이’로 불린다. 매주 학생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그는 친구를 만난단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김 동문은 “글과 그림으로 표출된 학생들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해요”라며 “학생들이 10대 시절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따뜻한 봄이 되길
김은진 동문은 작품을 통해 페미니즘과 연대하고자 한다. 그는 오랫동안 여성 예술가와 페미니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김 동문이 처음 발간한 책 「선인장 크래커」 역시 페미니즘 작품이다. 예술가 앞에 여성이란 단어를 붙여야 하는 순간을 언급하며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지적했다. 그는 “제가 겪은 대부분의 부조리와 편견이 사회와 정치적 구조에서 발생했어요”라며 “작품과 그 외의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을 마주하려 해요”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양성평등문화상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7년 그는 신진여성문화인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동문은 해당 상을 받음으로써 볼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다가갈 용기를 얻게 됐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감을 전하던 중 남성 중심적 이념 속에서 지워진 여성의 존재를 언급했다. 김 동문은 “폭력과 죽음에 쉽게 노출된 여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여성의 존재를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 내 맞설 예정이다.

김 동문은 ‘노뉴워크’란 페미니즘 미술 창작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뉴워크는 지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 혐오 사건과 더불어 당시 문화예술계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고발 운동을 계기로 결성됐다. 김 동문은 “사회 문제를 시각 예술로 표현할 인원을 찾는단 지인의 SNS 글이 모임의 시작이었어요”라며 창작 공동체가 모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노뉴워크'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었다. 김 동문은 페미니즘을 통해 좋은 삶이 무엇인지 탐색하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여성과 환경윤리를 주제로 작품 ‘아기 자세’(2021)를 발표했다. 해당 작업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노뉴워크 그룹전 ‘다정한 침해’를 통해 전시됐다. 아기 자세는 엄마의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요가 동작 중 하나다. 김 동문은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선입견과 오염된 환경 문제를 동시에 다룬 영상 작업이에요”라고 설명했다.


김은진 동문(산업디자인 04졸)은 예술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비롯한 다양한 주제들을 전달한다. 그는 “최근엔 여러 활동을 매개하고 있는 제 역할의 의미를 고민해요”라고 말했다. 김 동문에게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예술가로서의 원동력이 된다. 그는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숙명인에게 다양한 예술가를 사랑하고 아껴줄 것을 권유했다. 김 동문은 “제가 알던 세상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라며 “그 순간을 붙잡아 숙명인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소중한 순간을 한번 잡아보는 건 어떨까. 숙명인들의 순간으로 채워질 이번 봄은 분명히 따뜻할 것이다.

▲ 지난 2018년 예술 공간 ‘Platform L’에서 김은진 동문이 구자민 외 5인과 협업한 공연 ‘겨울나그네 : 방랑의 몽타주’의 전경이다.
▲ 지난 2018년 예술 공간 ‘Platform L’에서 김은진 동문이 구자민 외 5인과 협업한 공연 ‘겨울나그네 : 방랑의 몽타주’의 전경이다.
▲ 지난 2019년 전시관 ‘스페이스 XX’에서 진행된 김은진 동문의 개인전 ‘다독 풍경’ 모습이다.
▲ 지난 2019년 전시관 ‘스페이스 XX’에서 진행된 김은진 동문의 개인전 ‘다독 풍경’ 모습이다.
▲ 지난 2021년 김은진 동문이 참여한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기억과 기록을 위한 기획 전시 ‘여기-잇다’ 영상의 한 장면이다.
▲ 지난 2021년 김은진 동문이 참여한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기억과 기록을 위한 기획 전시 ‘여기-잇다’ 영상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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