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영화, 소설 등의 문화 콘텐츠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문화를 더 세밀하게 즐기는 현대 수용자들은 영화나 게임의 해상도뿐만 아니라 세계관의 정교함에도 관심을 갖는다. 세계관의 서사가 섬세할수록, 세계관 속 인물의 설정이 독특할수록 수요는 증가한다. 상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세계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 세계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이란 여러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가 분배되는 것을 뜻한다. 트랜스미디어는 변화를 뜻하는 접두사 ‘trans’와 매체를 뜻하는 ‘media’를 합성한 단어로, 한 개 이상의 미디어가 경계를 넘어 서로 융합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각기 다른 매체에 존재하는 미디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유튜브(Youtube) 등 미디어가 유통되는 플랫폼의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에서 ‘세계관’은 이야기가 구성되는 체계를 뜻한다. 콘텐츠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세계관은 사전적 의미와 그 뜻을 달리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세계관을 ‘자연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로 정의한다. 그러나 창작물에 사용되는 ‘세계관’은 가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을 뜻하는 단어다. 일례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Marvel Cinematic Universe)가 있다. 원작인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에선 한 세계관에 한 명의 영웅만 존재했다면, MCU에선 여러 세계관이 하나로 통합돼 다양한 영웅이 등장한다.

세계관은 새로운 콘텐츠로서 마케팅에 이용된다. 최근 출시된 상품의 질이 모두 상향 평준화돼 기능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서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가치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물리적 욕구의 충족만이 아니라 소비 주체의 경험이 더 중요해져 참여형 소비를 돕는 트랜스미디어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따라서 각 기업은 수용자가 콘텐츠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세계관 마케팅을 시도했다. 본교 한규훈 홍보광고학과 교수는 “세계관은 브랜드의 가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마케팅 도구다”며 “소비자는 기업의 세계관에 몰입해 자신의 가치관과 브랜드 가치를 동일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계의 판도를 뒤집다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하이브(HYBE) 엔터테인먼트’는 트랜스미디어의 특징을 살려 세계관 ‘BU(BTS Universe)’를 확장했다. 방탄소년단의 앨범인 <화양연화 Pt.1>, <화양연화 Pt.2>, <화양연화 Young Forever>는 같은 세계관 속에서 서로 연속성을 지닌다. 각 앨범의 가사와 뮤직비디오(Music Video)는 서로 내용이 연결되고 팬덤에 다음 앨범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BU의 내용은 웹툰 「세븐 페이츠: 착호(7FATES: CHAKHO)」로 제작됐다. 이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SM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 홍보에 세계관을 적극 활용했다. 엑소(Exo)와 에스파(Aespa)가 그 예다. 엑소는 초능력자, 에스파는 가상세계의 자아와 공존하며 비현실적 역할을 수행한다. 에스파의 노래 가사엔 ‘로켓 펀처(Rocket Puncher)’ ‘나비스(naevis)’ ‘제노글로시(Xenoglossy)’ 등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등장해 가상 세계의 환상성이 극대화된다. 한 교수는 “기존에 대중이 좋아했던 *MMORPG 게임의 비현실적 인물 설정이나 강한 능력치 등의 요소가 아이돌 산업에 차용됐다”며 “현대의 소비자들은 가상 세계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 낯선 아이돌 세계관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세계관은 팬에게 공통의 관심사와 소속감을 부여해 팬덤 결속력을 더욱 강화한다. 유진(미디어 19) 학우는 “처음엔 세계관의 내용이 낯설었다”면서도 “이후 상징을 해석하며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MOBA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의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는 게임 내 세계관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관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아케인(Arcane)>은 출시 후 넷플릭스(Netflix) 주간 순위 3위를 달성하며 흥행했다. 또 다른 콘텐츠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캐릭터 아리, 아칼리, 이블린, 카이사로 구성된 가상의 케이팝 그룹 ‘K/DA’다. 이들은 기존 리그오브레전드와 다른 세계관에 존재하며 K/DA만의 고유 설정을 지닌다. 지난 2018년 발매된 이들의 데뷔곡 ‘POP/STARS’는 현재 유튜브에서 조회 수 약 5억 회를 돌파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여러 캐릭터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 코미디 영상을 제작한다. 대표 연작으론 ‘05학번 is back’ ‘한사랑산악회’ 등이 있다. 정재형 피식대학 소속 코미디언은 “시청자들이 ‘05학번 is back’과 ‘한사랑산악회’의 등장인물은 서로 가족 관계라고 추측했다”고 말했다. 이는 대중이 소비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이야기를 형성하는 2차 창작의 주체가 된 대표 사례다. 이러한 현상을 ‘스토리 리텔링(Story Retelling)’이라 칭한다. 김민수 피식대학 소속 코미디언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의해 예상치 못했던 부분으로 캐릭터가 확장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관 과몰입’, 마케팅의 미래가 되다
기업 이미지를 차별화한 세계관 마케팅은 수익 증가를 이끈다. 소비자는 세계관 속 캐릭터와 교류하는 경험을 통해 해당 브랜드에 애착을 갖게 된다. 특히 삼양식품의 경우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음에도 세계관을 홍보에 이용했다. 삼양식품은 자사 설립 60주년 광고에 세계관을 접목한 후로 매출이 전년 대비 1.8% 증가해 약 679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한 교수는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브랜드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험을 통해 브랜드와의 친밀감이 강화돼 충성도가 높아진 고객은 소비를 지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중은 기업의 세계관이 홍보성 콘텐츠임을 인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대표적으로 빙그레의 제품이 의인화된 캐릭터가 존재한 세계관 ‘빙그레 나라’가 있다. 빙그레 나라의 왕위 계승자로 설정된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의 소개가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뒤엔 팔로워가 약 5만 명 이상 증가했다. 빙그레와 같은 식품 광고는 타 분야보다 친숙해야만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이에 한 교수는 “빙그레 세계관은 엉뚱하고 신선한 설정으로 식품 회사의 가벼운 이미지를 잘 활용한 사례다”고 설명했다.

세계관은 모든 소비자를 포괄할 때 활용범위가 더 확대된다. 세계관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상 공간에서 동등하게 마주할 수 있단 공간적 장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세계관을 수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소비자는 콘텐츠의 서사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한 교수는 “세계관을 이해할 의도나 동기가 없는 소비자를 위해 친숙한 소재가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채원(미디어 21) 학우 또한 “복잡한 세계관은 새로운 팬덤이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가상 세계관엔 긍정적인 힘이 가득하다. 마블 시리즈의 영웅, 초현실 세계에서 노래하는 아이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05학번 is back’은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비자들은 그들과 함께 가상 세계에 몰입해 피곤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다. 일상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다채로운 세계관 속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MMORPG: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약자로, 게임 속 등장인물을 플레이어가 직접 수행하는 형식이다.
**MOBA: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의 약자로, 다양한 사용자가 한 공간에서 전략과 협력을 이용해 대결하는 구도의 게임이다.

참고문헌
서현경.(2021). 캐릭터 중심 스토리텔링에서의 캐릭터 역할 확장과 세계관 대체. 한국컴퓨터정보학회논문지, 26(11), 67-74.
이민하.(2019).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브랜드 마케팅.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13(3), 351-361.
이인화 외.(2015).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이해.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이재현.(2022.02.09.) “삼양식품, 작년 4분기 매출 1928억원 달성…전년동기대비 27.7% 늘어”, 식품음료신문.
정덕현.(2021). [SPECIAL N] 세계관, 그 전략과 진정성 사이. N 콘텐츠, (18):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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