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제사회가 혼란스럽다. 매일 신냉전이 시작될 것인지, 혹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필자 역시 이에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이에 지난 1월엔 외부기관에서 주관한 외교 및 안보 관련 수업을 듣게 됐다. 해당 수업에서 한 연사의 말이 필자의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한 시대를 정의하는 일은 그 시대가 지나 봐야 가능하다는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말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숙대신보 기자로서의 일은 익숙해지긴 해도 쉬워지진 않는다. 발간이 있는 달엔 늘 전전긍긍하며 사는 기분이다. 발간이 끝나는 달은 오래된 숙제를 마친 것처럼 후련하다. 그래서 필자에게 숙대신보가 필요한 것인지, 혹은 필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자문한다. 그 질문은 언제나 늘 숙대신보에 대한 지지부진한 미련으로 끝나지만 발간이 있는 달이면 질문은 매번 반복된다.

필자는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냉전 상황 속에서 평화로운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냉전처럼 역사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진 않지만 필자에겐 숙대신보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매주 발간을 위한 월요일이 되면 숙대신보를 수료한 뒤 필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필자는 숙대신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또 숙대신보 기자로서의 생활이 끝난 후, 필자는 이 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수습기자와 정기자를 거쳐 이번 학기 차장기자가 된 필자에게 숙대신보 기자로서의 시간은 이제 딱 절반이 남았다. 지난 두 학기 동안 여러 편의 기사를 작성했으나 필자는 매주 목요일 저녁 초고를 보며 여전히 미숙하다고 느낀다. 한편으론 숙대신보 생활을 통해 갖게 된 질문하는 습관을 일상 속에서 자각할 때마다 ‘언어는 생각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한다. 연사의 말처럼 필자가 숙대신보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될지는 아마도 숙대신보 기자로서의 시간이 끝난 후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이번 주 기사를 무사히 발간하는 데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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